'긱(geek)'의 사전적 의미는 '괴짜'이다. 특정 분야를 탁월하게 이해하는 특이한 사람을 뜻한다.
정수근(37)은 프로야구계의 긱이다. 그는 야구 천재로 불렸다. 1995년 OB와 2001년 두산에 한국시리즈 챔피언을 안겼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멤버였다. 수퍼 스타만 누릴 수 있다는 프리에이전트(FA) 대박도 쳤다.
그럼에도 정수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야구 천재가 아닌 악동이다. 그의 야구 인생 후반부는 음주와 폭행 등 각종 사건·사고로 점철됐다. 결국 그 일로 야구를 접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애착은 은퇴한 뒤에도 변함이 없다.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뛰지는 않지만 해설과 인터넷 방송, 심지어 닭강정 사업까지, 그가 하는 일은 야구와 맞닿아 있다. 베이스볼긱은 야구 마니아를 위해 존재한다. 정수근은 이들을 위해 '발칙한' 이야기를 내놓을 참이다.
-요즘 뭐하고 지내나.
"사업한다. 잠실야구장에서 수근이네 닭강정이랑 대리운전 정수근의 앞뒤가 다른 전화번호 1577-25xx. 대리운전은 친형이 하고 난 이름만 빌려준 거다."
-음주는 안 하나.
"한다. 운동 안 하니 편하게 마시지."
-말을 거침없이 한다는 느낌이다.
"인생, 하고 싶은 말 하고 사는 거 아냐? 두 번 살아?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이다."
-선수에게 코멘트도 해주나.
"냉정하게 선수는 한 번도 까본 적이 없다. 감독 코치는 까봤는데."
-소신인가.
"선수가 실수를 하는 건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서이다. 실수 안 하는 선수를 내보내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결과가 안 좋으면 우선 잘못한 게 감독과 코치다."
-베이스볼긱에 참여하는 철칙은.
"선수 까는 거 절대 없다. 내가 아파봤기 때문에 좋은 얘기 위주로 가지, 나쁜 얘기 없다. 내가 한 마디 잘 못 쓰면 그 사람부터 가족까지 상처 받는다. 칼보다 글로 사람 죽이는 게 더 무섭다. 글로 희로애락을 주면 되는 거다. 기쁨을 줘야지."
<정수근이 들려주는 첫번째 이야기-악마의 유혹, 스폰서>정수근이>
스폰서. 사전적 의미는 행사나 사업에 돈을 대는 기업이나 사람이다. 단어 자체에 긍정이나 부정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스폰서라고 하면 검은 그림자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연예인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고 그 대가를 바라는.
프로야구에도 연예계처럼 스폰서가 있다. 이들이 무엇을 하느냐. 똑같다. 선수들의 돈줄이다. 돈 주고 술 사주고 여자 소개해준다. 스폰서가 받는 건 없다. 스타 야구 선수와 어울리는 것 자체를 낙으로 삼는다. 시쳇말로 '가오' 잡는 거다.
-야구 선수들은 겨울이 심심하겠다.
"뭐가 심심해? 이 시기에 편하게 술 마시잖아. 훈련이 있어, 뭐가 있어?"
-스폰서와는 처음에 어떻게 연결이 되나.
"술자리에 우연하게 합석하는 경우가 있고. 아는 분의 소개. 그게 가장 많지."
-스폰서가 부르면 백이면 백 다 나가겠다.
"그럼. 그렇게 합석하다가 술 한 잔 마시게 되면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는 거지. 그 이유 중 하나는 냉정하게 내가 돈 주고 마실 수 없는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예쁜 아가씨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지. 악마의 유혹이 시작되는 거다."
-얼마나 자주 만나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원정 오면 3연전 내내 만나는 선수도 있다. '형님, 저 갑니다' 하면 술 사달라는 이야기다."
-운동에는 어느 정도 지장을 주는가.
"악마의 유혹이 시작되면 한 달에 한 번이 주 2~3회가 되겠지. 술을 마시고 많은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술 자리에는 아무래도 많은 여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 보면 운동에 대한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지. 텐프로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미인들과 술자리. 그 유혹을 어느 누가 피할 수 있겠나. 사실 내 와이프보다 이쁘더라. 총각 선수일 경우 술집 아가씨와 사귀기도 한다. 유부남들도…."
-스폰서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개인 사업가가 많다. 재벌 2세와 지역 유지도 있고. 다들 야구를 좋아해 선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형 동생 하면서 친구들한테 폼도 잡고. 야구 선수를 연예인보다 더 우상으로 여긴다."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이었나.
"현찰이지. 지갑에서 100만원 짜리 수표를 꺼내준다. (얼마까지 받아봤는가라고 묻자) 한 달에 500만원은 기본으로. 개인적으로 돈도 많이 뺏었다."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다.
"아, 어떻게 풀어가야 되지? 경기가 끝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다는 일명 텐프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절세의 미인들과 술자리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은 양의 술이 홀짝홀짝 들어가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아무래도 술을 많이 먹어 다음날 경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선수들과 맥주를 마시다가 스폰서가 전화가 와 같이 갔다. 내가 스폰서 지갑을 달라고 해 선수들에게 현금 200만원씩 나눠준 적이 있다. 용돈으로. 그 당시 롯데 선수들이 연봉을 적게 받아 챙겨주고 싶었다. 왜? 그 분은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웬만한 스타 선수면 스폰서가 다 있을 것 같다.
"다 있다고 봐야지. 차이는 좋은 스폰서를 만나느냐, 나쁜 스폰서를 만나느냐 하는 거지."
-다른 요구를 안 하니 순수한 것도 같다.
"처음에는 좋았으나 몸이 지쳐 호텔에서 쉬고 싶은데 새벽 2~3시에 불러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술 자리를 해야 하는. 한마디로 얼굴마담을 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나쁜 스폰서지."
-거절해본 적도 있나.
"있지. 그러면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나쁜 스폰서, 좋은 스폰서가 있다고 했다. 어떤 스폰서가 좋은 스폰서인가.
"선수들 가끔 불러서 운동에 방해 안 주고 진짜 우정을 나누는 스폰서가 있다. 타 구단 선수 얘기다. 어릴 때부터 보약 지어주고 몸에 좋다는 거만 사주는 거야. 운동만 열심히 하라고. 지금 최고가 돼서 일본에 가 있어. 좋은 스폰서는 신인 때부터 그 선수의 싹을 보고 '조금만 서포트해주면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형 동생하며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이다."
-후원자 같은데.
"후원자라 하지 말고 나누자고. 좋은 스폰서, 나쁜 스폰서. 그래야 재미있지."
-정수근 위원은 좋은 스폰서를 만나본 적 없나.
"천사도 있었다. OB 시절 좋은 음식과 보약 많이 챙겨주시고 항상 식사 자리를 마련해 운동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분들이 계셨다. 그런데 내가 야구를 잘 하고 많은 돈을 받으면서 그 분들을 잊었다. 롯데에 가면서 악마의 유혹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분들이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비시즌에 유혹이 심하겠다.
"비활동기간이 스폰서를 가장 많이 만날 때다. 특히 FA(프리에이전트)로 이적한 선수들에게 악마의 손길이 다가오게 된다. 선수들이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잘못 판단하면 나처럼 될 걸."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이대호(소프트뱅크)는 스폰서가 없었나.
"유혹이야 많았지. 그런데 (이)대호는 가정을 먼저 생각해 빠지지 않았다. 유혹을 뿌리쳐야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