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긱이 야구 마니아 여러분의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는 까다롭습니다. 평소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자주해 긱(GEEK, 괴짜)이라 손가락질 받던 여러분! 세상 누구도 묻지 않았던, 살아있는 질문만 받습니다. 엄격한 질문 선별 과정을 거쳐 긱(GEEK)의 시각에서 진지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베이스볼긱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최초의 모바일 야구신문입니다.
Q.여느 남자들처럼 스포츠에 푹 빠져 삽니다. 그런 제게 아주 큰 고민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경기를 보면 꼭 진다’라고 말하는 사람, 지인 중에 한 명 쯤은 꼭 있죠?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월드컵이든, 프로야구건 김연아 선수의 경기건, 중요한 경기를 제가 보면 꼭 지거나 부진합니다. TV 중계를 보다가도 중요한 장면에서 얼른 꺼버리거나, 올림픽 기간에는 생방송이 아닌 하이라이트만 볼 정도입니다. 스포츠긱에 묻겠습니다. 왜 제가 경기를 보면 꼭 질까요? (양재동에서 근무하는 신순호)
A. 김연아 선수가 벤쿠버 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확정짓던 때가 생각나는 군요. 당시 모 토익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기자는 수업 중에 몰래 빠져나와 로비에서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저는 조남규씨와는 반대로 ‘내가 경기를 보면 꼭 이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프리스케이팅 점수 150.06, 합계 점수 228.56의 엄청난 기록으로 여유 있게 금메달을 따내더군요. 그 이후로는 ‘내가 경기를 보면 꼭 이긴다’라는 신념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대기록에 제 숨은 노력이 한몫 했다는 자부심도 생겼구요.
내가 경기를 보면 꼭 진다라는 조남규씨의 현상은 ‘머피의 법칙’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머피의 법칙
눈을 감고 종이 위에 무작위로 점을 찍는다고 가정할 때, A와 B 중에 어떤 양상으로 결과가 나올까요? A는 마치 눈을 뜬 상태로 신중하게 골고루 찍어낸 모습 같습니다. 무작위로 찍은 결과가 A처럼 나온다면 오히려 특별한 경우이고, 자연스러운것은 B겠지요. 통계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군집현상’ 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골고루 분포하기보다 몰려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단기간동안 가족 중에 한 분이 중병에 걸리시더니, 곧 지인이 사망하고, 집안에 큰 우환이 생기는 경우에 ‘불행이 몰아서 온다’라고 표현하지요. 군집현상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지독한 불운’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여러 개의 계산대가 있는 쇼핑센터에서 줄을 서면, ‘왜 내가 선 줄만 왜 느릴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으세요? 우연이 아닙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자기가 선 줄이 느릴 확률이 높은 게 당연합니다. 3개의 계산대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선 줄이 가장 빠를 확률은 1/3인 반면, 다른 두 줄 중 하나가 빠를 확률은 2/3이기 때문입니다.
남규씨의 ‘내가 경기를 보면 꼭 진다’라는 징크스 역시 수학적, 통계적으로 일상에서 엄연히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현상’입니다.
자,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스포츠광인 남규씨의 아쉬움과 불편함도 그렇지만, 열심히 훈련한 선수와 팀이 남규씨가 그 경기를 본다는 이유로 경기에 패배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겠지요. 가깝게는 소치올림픽의 김연아 선수, 2014 브라질월드컵과 인천아시안게임이 걱정입니다. 해당 선수와 팀, 국가 성적의 최대변수가 ‘남규씨의 관람여부’ 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조남규씨의 질문에 대하여 통계학과 교수와 심리학박사, 역술가등 관련 전문가, 들에게 해당 사연에 대해 의견을 요청했습니다.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는 '특정 사람이 경기를 보면 진다'라는 가설에 대해서 수학적, 통계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보는 경기가 많아질수록, 모든 경기에 질 확률은 물론 낮아져서 그 가능성이 희박하게 되겠지만 말이죠.
100명을 모아놓으면 서로 생일이 같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꽤 높습니다. 그러나, 100명을 모아놓고,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훨씬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한 스포츠 선수나 팀이 연패를 할 확률은 높으나 그 경기마다 조남규씨가 관람하게 될 확률은 낮다는 겁니다. 다만, 한 스포츠 경기에 작용하는 변수가 매우 많아, 그 결과가 ‘남규씨의 관람여부’로 한정짓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장 교수는 "자료가 모아지는 방법에서 발생하는 자료의 왜곡, 즉 표본의 편중(Selection bias) 현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 "대통령 선거를 예로 들자. 자신의 트위터 타임라인에 있는 글들만 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긍정적인 이야기가 유독 많다. 이 때문에 내 지지 정당 후보가 선거에서 이길 것이란 예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그 이전 트위터 팔로우를 하면서 은연 중에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팔로우했다는 사실을 잊게 됐기 때문이다"고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시죠.
"결국 내가 본 경기들만 졌다는 것은, 내가 응원하는 팀 경기 중에서 진 경기가 머리 속에 각인이 됐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표본이 진 경기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나중에 생각했을 때 유독 진 경기가 많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래는 장 교수가 조금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표본의 편중'에 대한 내용입니다.
"실험변수를 집단에 따라 다르게 가한 뒤 두 집단의 결과변수의 수준을 측정해 본다. 두 집단 간의 결과에 차이가 발견됐다고 하자. 실험변수의 영향에 의한 차이일 수도 있으나, 어떤 경우에는 실험변수를 가하기 전에 두 집단이 이질적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각 집단의 최초 상태가 상이함으로써 실험효과의 왜곡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예컨대, 가격인하가 매출액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기 위한 실험에서 실험 집단을 가격에 아주 민감한 저소득층에 편중되게 구성하였다면 가격 인하의 효과가 훨씬 작을 수 있다. 두 집단은 가격에 대한 반응도가 다른 상태에 있으므로 이 경우 어느 한 집단의 가격인하에 대한 구매 태도로로 가격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움심리상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진명자 심리학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경기를 보면 진다라고 여기는 것은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싶은 심리입니다. 팬 한 명의 관람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그런데도 팬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싶은 겁니다. 즉,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스스로 주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진 소장의 의견에 의하면, ‘내가 경기를 보면 꼭 진다’라고 여기는 조남규씨의 걱정은 쓸데없는 고민이 됩니다. 오해, 착각, 자기 암시 등의 심리학적 왜곡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홍대에서 사주 카페를 운영하는 소문난 점술가 '도해 선생' 역시 비슷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스포츠 경기 관람에 대해서 사주나 운세를 이야기하기 어렵죠. 사주가 안 좋은 사람이 경기를 본다고 이길 경기가 지겠습니까? 매일 경기를 보는데 매일 그 팀이 진다면, 오히려 나쁜 사주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그렇다면 응원하고 있는 상대 팀의 경기를 보면 되잖아요. 김연아 선수를 이기게 해주기 위해 아사다 마오의 경기를 보는 거죠. 조남규씨는 아무래도 응원하던 팀이 어쩌다 경기가 잘 안풀리는 날 관람하고는 스스로 징크스 같은 걸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세 분의 공통적인 의견은 ‘조남규씨의 경기 관람 여부가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점에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가 의견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없으시다면, 기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추천해 드리고자 합니다.
'샐리의 법칙'에 빠진 팬과 함께 경기를 보기
조남규씨가 ‘내가 경기를 보면 무조건 진다’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면, 수소문을 해서 ‘내가 경기를 보면 왠지 무조건 이긴다’라는 생각을 가진 분과 친분을 쌓아, 함께 경기를 보는 것은 어떨까요. 머피와 샐리가 만나, 두 사람 중 한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경기 외적인 요소를 서로 상쇄시켜 주면 되겠습니다. 물론, 두 분이 함께 경기를 볼 때마다 무승부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큰일이겠지만. 감사합니다.
‘샐리의 법칙’이란?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꼬이기만 하여 되는 일이 없을 때 쓰는 '머피의 법칙'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즉 머피의 법칙은 자기가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우연히 나쁜 방향으로만 일이 전개되어 거듭 낭패를 당하는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반대로 샐리의 법칙은 일이 우연히도 자기가 바라는 바대로 진행되는 경우죠. 예를 들어 약속 시간보다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더니 자신의 기분을 알기라도 하듯 상대방은 자신보다 약간 늦게 도착하는 경우, 또는 맑은 날에 우산을 들고 나왔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경우,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시험 직전에 급하게 펼쳐 본 부분에서 시험 문제가 출제된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