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배우계에 들어선 것 같다" 했더니 "이히히히히" 웃는다. 반짝 윤광 피부에 화색이 돈다. "이히히히가 뭐니, 여배우가" 했더니 "파하하하하" 화답한다. 살짝 보이는 목젖까지 유쾌하다.
장난기 넘치고 털털한 박정아(33)는 그대로인데 쥬얼리 때와는 다른 아우라를 둘렀다. 요 몇년 드라마만 들입다 파더니 확실히 달라졌다. 10년간 잘나가던 가수생활을 바이하고, 연기자를 두번째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내린 결정이라 더욱 그랬다.
박정아는 <웃어라 동해야> <당신뿐이야> <내 딸 서영이> 같은, 한번 시작하면 해를 넘기는 일일극, 주말드라마에 쉬지않고 출연하며 주위의 우려를 떨쳤다. 최근엔 JTBC 일일드라마 <귀부인> 으로 매일 눈도장 찍고 있다.
Q <귀부인> 에서 키스신 강렬하던데요. 리얼 그 자체라며 캡처장면 돌아다니던데. 귀부인>
A 아, 그 장면. 첫 촬영 세번째 신이었는데, 상대역 현우성씨와는 네번째 만난 날이었나? 서먹한 상태였는데 키스신을 찍어야 해서. 그냥 했어요. 생각보다 진하게 나왔고.
Q 키스신도 합은 맞추고 찍는 거잖아요?
A 물론 합을 짜긴 하는데, 슛 들어가서 그냥 느낌대로 가는 경우도 많고. 근데 그 장면이 아주 중요했거든요. 처음 등장하는 신이면서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장면이랄까? 씨앗을 잘 뿌려야 싹도 잘 트는 거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입술을) 덥썩 물었죠. 처음을 세게 갔더니 뒤에 포옹하는 신들에선 그냥 내 남자 어깨 같은 느낌이 들대요.
Q 재벌녀로 나오던데, 드라마 찍으면서 대리만족 좀 되겠어요.
A ㅋㅋ. 조금은. 백화점 본부장이니까. 드라마 할 때마다 다른 인생 사는 거 드라마틱해요. <귀부인> 미나는 저랑 다른 점이 많아 좋아요. 예를 들어 미나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이기적이 되죠. 전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미나를 연기하면서, 살면서 어느 정도 이기적인 면이 필요할 때도 있구나, 해요. 캐릭터에게서 배우는 거죠.
Q 매회 '재벌패션' 보는 맛도 쏠쏠하던걸요.
A 스타일리스트가 고생이 많아요. 저 원래 액세서리 다는 거 싫어하는데 여기선 쥬얼리 많이 해요. 퍼 코트도 원없이 입어보고 있고. 어깨에 코트 툭, 무심하게 걸치는 거 해보니 저도 덩달아 좀 우아해지는 것 같은 느낌?
Q 장미희씨랑 모녀지간인 거죠. 그녀는 어떠세요?
A 여배우 DNA는 타고 나는 거란 걸 옆에서 뵈면서 느껴요. 그 본연의 우아함은 우와, 정말 대단하시거든요. 애티튜드면에서도 그렇고.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밤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독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여배우로서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세요.
Q 여배우에겐 내숭도 어느 정도 필요하죠.
A 네네. 맞아요. 저의 가장 큰 숙제잖아요. 여자 냄새 나게 하는 거. (이)보영 언니한테 맨날 혼나요. 여자 냄새 안난다고. 적당한 내숭이 필요한데, 저로선 좀 힘든 부분이고. 갑자기 말수 줄이고 행동 가식적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
Q '가수 출신'이라는 딱지가 연기하는데 솔직히 플러스되는 건 아니잖아요.
A 편견은 있으시겠죠.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 때도 더러 있었고. 근데 누가 날 어떻게 본다는 거에 대해 크게 좌지우지되는 성격이 아니라 다행이었죠. 그런거 신경썼으면 정말 피곤했을 거 같아요. 근데 계속하니까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내딸 서영이> 때부터 조금씩 연기자로 봐주시기 시작했던 거 같고. 일일극 주말극 꾸준히 하니까 어르신들은 제가 가수였단 거 모르는 분들도 많으시고.
Q 또 막상 몰라주면 섭섭할 거 같아요.
A 흐흐. 맞아요. 제가 10년동안 한 게 있는데 어찌보면 섭섭한 일이죠. 근데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고, 신경쓸 필요도 없는 거고. 제가 하고 싶은 연기 하고, 맡은 책임 다 하고, 노력하고, 그 안에서 즐겁고 그럼 되는 거죠.
Q 여전히 낙천적이네요.
A 연기 시작하면서 다짐한 게 있어요. 내가 나를 판단하지 말자. 혼자서 못했다, 잘했다 이러면서 괴로워할 필요 없다. 또 업계의 나에 대한 생각을 혼자 단정짓지 말자. 이런 것들요. 스트레스 안받고 즐겁게 살아야죠.
Q 중국 드라마도 찍었잖아요. <팝콘> 이었나요? 팝콘>
A 네. 상해서 꼭 45일 있었어요. 중국 드라마를 상해로 찍으러 가는 건 복받은 일이라고들 하더라구요. 헤어메이크업하는 친구, 대표님, 중국 통역사 이렇게 45일을 붙어있으면서 25화 다 찍고 왔죠. 음, 중국 드라마 시스템은 계약제라 할리우드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할까? 우리는 드라마 1부부터 5부 왔다갔다 찍잖아요. 근데 거긴 1부에서 25부로 확 튀어요. 상대 배우랑 첫날 만나서 17부에 있는 헤어지는 신 찍고. 좀 친해졌는데 첫 만남 신 찍고 막 이래요. 감정 연결 뒤죽박죽 돼죠. 그런 훈련하고 왔어요.
Q 중국어 실력은?
A 촬영에서 쓰는 말 조금 하는 정도? 위치 잡을 때, 카메라 앞으로 10원어치만 와. 뭐 이런 것들? 간단한 건데 중국어 하면 그분들이 되게 좋아했어요. 처음 갔을 때 말이 안 들리니까 너무 답답했는데, 나중에는 서로 통해요. 신기할 정도로.
Q 쥬얼리 때 한류 좀 타지 않았나요?
A 아, 그것도 감동 먹었어요. 세트장에 세상에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전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쥬얼리 활동을 과소평가하는 건 절대 아닌데 사실 중국 활동 별로 안했거든요. 그런데 팬이 있는 거에요. 밤 11시, 12시까지 여자애들이 기다려주고. 노래부르던 모습들을 기억해서 봐주러 왔다는게 신기하고 고마웠어요. 짠하기도 하고.
Q 참, 포털사이트에 박정아, 치면 연관검색어 1번이 뭔 줄 알아요?
A 쥬얼리? 귀부인?
Q 서인영.
A 에? 또 인영이?
Q 그러게요. 인영이랑은 잘 지내죠?
A ㅎㅎ. 그럼요. 1월1일에 인영이가 전화해서는 "설 잘 보내. 새해 복 많이 받고" 하길래 "니가 왠일이냐"고 했죠. 평소에 연락하는데, 그래도 신정에 또 전화받으니 새롭더라구요. 인영이가 "내가 이제 이런 날 좀 챙겨" 하길래 "감동이다" 했죠. 인영이가 "예전에 언니가 혼자 미드보고 혼자 음악듣고 그러던거 이젠 내가 하고 있어. 언니가 그때 왜 그랬는지 알 거 같아" 이런 얘기도 하고.
Q 연관검색에 길도 아직 있더라구요.
A 아아아.
Q 그와도 연락하고?
A 했었었는데, 안한 지 꽤 됐네요.
Q 그 뒤로 남자친구는 없었구요?
A ㅎㅎ. 없었죠. 만들 틈도 없었고. 저 아팠었잖아요.
Q 맞아. 갑상선암. 할머니 많이 놀라셨겠어요. 이젠 괜찮은 거죠?
A (할머니) 진짜 놀라셨죠. 아, 근데 저 원래 알고 있었어요. 검진할 때마다 조심하라고 몇년 째 그랬거든요. 이번엔 증상이 좀 심해져서 수술한 거구.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한다는 교훈 얻었고. 사실 작년에 중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불안했어요.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것도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괜찮으시니까 이젠 달리셔야할 땝니다" 하셔서 마음 놓고 일 시작했죠. 매일 약먹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규칙적인 생활하려고 해요. 잠도 충분히 자려고 노력하구요. 아무리 느리다 해도 암은 암이니까.
Q 막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그러는 건 아닐테고.
A 물론이죠. ㅋㅋ. 그래도 꼬박꼬박 운동하려고 노력해요. 저 소속사 옮기고 나서 많이 혼났어요. 자기 관리 안한다고. 쥬얼리 때는 피부과도 안 갔었잖아요. 운동도 잘 안했구. 소속사 대표님이 여장부 스타일이신데 엄청 꼼꼼하게 챙기세요. 전에 작품 들어왔을 때 "대표님, 제가 이거 할 수 있을까요?" 했다가 한 소리 들었거든요. "난 우리 배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뭐든 밀어붙이는데 정작 배우가 자신없어하면 어쩌냐"고요. 정신 번쩍 들더라구요.
Q (황 대표님이)정말 엄청 케어하시더라구요.
A 네, 늘 감사한 맘이죠.
Q 노래는 이제 안할거에요?
A 안 하진 않겠죠. 근데 일단 올해는 아닌 것 같아요. <귀부인> 잘 마쳐놓고 배우로 입지 확실히 다져놓고 영화 진출하는 게 올해 목표거든요. 또 혹시 모르죠. 드라마 OST 연결되면 부르게 될 지도.
김소라 기자 sod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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