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스포츠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야구팬들은 ‘얼빠’(주로 선수의 얼굴을 보고 팬이 된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야구가 축구나 농구 같은 다른 인기스포츠에 비해 룰이 제법 복잡하고 직관적인 이해가 힘든 게임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얼빠’에 대한 반감은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의 양상을 취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야구를 모르던 사람이 야구에 입문하기 위해선 ‘얼빠’가 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유일한 방법이란 것은 아니다. 친구 따라 직관 갔다가 매력을 느끼고 팬되었단 얘기는 오죽 많은가).
오히려 야구가 제법 어려운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야구에 대해 작정하고 탐구하기로 한 사람이 아니라면, 야구룰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은 몇 십 게임을 보는 것이다. 지역 정체성과 팀 정체성을 일치시킨 이들은 비교적 이 문턱을 쉽게 넘는다. 삼성, 롯데, KIA, 한화 등의 구단은 이런 부분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자기 팀이 잘하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 포스트시즌 경기부터 흥미진진하게 보다가, 어느 순간 야구의 진정한 묘미는 시즌 경기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수십 게임을 보다 보면 직관적으로 흥미로운 타격전만큼이나 투수전도 살 떨리는 재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이 문턱을 넘지 않는 지역팬들도 있다. 어떤 지역팬들은 평소 시즌 야구를 거의 보지 않는 이들이라도 팬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술집 TV에 ‘우리팀’ 경기가 나올 때, 혹은 포스트시즌 때 잠깐 집중해서 본다. ‘얼빠’라 불리는 이들이 이들에 비해 야구를 모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면, ‘얼빠’도 비판받을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지역적 정체성이 옅은 수도권 주민이나, 지역과 팀을 연동시키는 것이 마뜩찮은 이들 중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어느 시절 한 팀의 매력적인 모습에서 ‘로망’을 보고 팀팬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성년이 된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야구에 관심을 붙여 보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야구 얘기를 해서 저도 좀 봐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해요?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하나요?”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 미남 야구선수들의 이름을 대며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라고 권유하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남자들에겐 안 통할 것 같지만 사실은 남자들도 ‘멋있는 남자’를 보는 걸 제법 좋아한다. 물론 얼굴만 잘 생긴 선수여선 안 되고 야구도 어느 정도는 하는 선수여야 한다. 취향에 맞는 사람을 골라 보라고 한 뒤 팀은 두 개 정도로 압축해 주는 것이 좋다. 한 팀으로까지 압축할 경우 지역팬이 아닌 경우 흥미를 붙이지 못할 우려가 있고 세 팀 이상은 초심자에게 너무 번거롭다.
취향에 맞는 선수가 속한 팀 중, 상위권 팀 하나와 장기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팀 하나 정도를 골라서 경기를 보라고 한다. 사람 성격 따라 당장 이기는 걸 보고 싶은 사람과 장기적으로 정을 붙인 무언가가 개선되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수에 대한 팬심으로 팀을 골라 수십 게임이라는 첫 번째 문턱을 넘게 한다.
결국 야구선수는 야구를 잘할 때가 제일 멋있다. 경기에서의 야구 선수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이미지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다. ‘얼빠’로 시작한 이라도 몇 게임을 보다 보면 금세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무언가가 뒤집힌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가 멋있는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넘어, 멋있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좋아하게 된다. 경험으로 돌이켜볼 때 이택근을 보고 넥센을 응원하기 시작한 넥센팬이 박병호에 찬탄하게 되는 데엔 두달이면 충분했다.
지역팀팬이라도, 어떤 팀이나 야구란 경기 자체에 매력을 느낀 이라도, 최초로 ‘로망’을 느낀 어떤 출발점에선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모르지만 계속해서 보았고, 보다 보니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 ‘얼빠’라 불리는 이들도 그런 궤적을 다소 뒤늦게 밟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비판받을 일이란 말인가. 우리의 취미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얼빠’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