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찾고 보니 저자 이름이 권지안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 연핑크 띠지가 소녀의 볼같은, 손바닥만한 문고판이다.
뒤표지에 나온 추천인들이 신선했다. 이름만으로 먹어주는 화려한 연예인 명단 대신 엄마, 미술선생님, 동창, 첫사랑 등이 추천사를 썼다. 연예인이 낸 '그렇고 그런' 책일 거란 편견이 좀 누그러들었다.
단숨에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매끈한 문장이나 세련된 화법을 구사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짬짬이 들쳐보면 와닿는 문장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일 때 애써 정리하려 하면 안된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때가 있으므로'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늘 조금씩 더 참아나가고 있지 않은가' '무거운 마음 때문에 몸도 무거워지지만 몸을 힘차게 하고 나면 마음도 힘차게 변한다는 사실!'
1984년 9월에 경기도 산본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되는 해 어렵게 청담동에 입문. 버라이어티한 10대를 보냈고, 유니크한 20대를 지났고, 이제 드라마틱한 30대를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작가 권지안을 만났다.
Q 권지안이란 본명으로 책을 냈네요.
A 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가 타이틀이니까요. 권지안이란 내 이름을 찾아들고 나한테 솔직해지고 싶었어요. 저자로 첫 출발하는 셈이죠. 앞으로 책 낼 때나 전시회할 때는 권지안이란 이름을 쓰고 싶어요.
Q 솔비란 이름으로는 힘든 일인가요?
A 그런 의미가 아니라. 솔비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제 태명이에요. 가수 데뷔하고 예명으로도 썼으니까 권지안만큼 저한테 소중하죠. 그렇지만 솔비란 이름에서 떠오르는 선입견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천방지축이었고, 필터링 전혀 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근데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시야가 바뀌고 보이는 것들이 달라지는데, 대중들은 예전 제 모습만 기억하시는 거죠. 저도 지금 보면 이상하고 어색해 보이는 예전의 모습들을 제 이미지로 딱 기억하고, 솔비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런 거 있거든요. 그래서 선입견 한꺼풀 벗기고, 공감하고 싶어서 권지안이란 이름을 쓴 거에요.
Q 연기할 때 본명 쓰는 가수 친구들처럼?
A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네요.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고 싶고, 책에 도전하고 싶거든요. 0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다짐 같은 거에요. 참, 얼마전에 가로수길에서 어떤 팬분이 "권지안씨, 사인 해주세요" 하시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솔비가 아니라 권지안으로 봐주는구나. 앞으로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자신감도 생기고.
Q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란 제목에서 많은 게 느껴져요.
A 네. 솔직히 저 약하고 여려요. 태어날 때 2.2킬로 미숙아로 태어났고, 성장이 느렸고, 어렸을 때는 엄청 말랐었구요. 그래서 제 안에 갖고 있던 자아 자체가 약하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데뷔하면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야한다는 강박증? 그런 거 때문에 강해보이려고 노력했고, 또 그 모습이 조금은 잘못 비쳐져서 싸가지 없고, 엄청 세보였던 거죠. 나이 먹으면서 내가 약하고 모자라고 눈물도 많고, 때로는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걸 인정하게 됐고,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도 쓰게 된 거구요.
Q 지난번 다이어트책은 연예인들이 몸매 가꾸기 책 많이 내니까. 근데 이번엔 에세이라 좀 놀랐어요. 예전 타이푼 활동할 때 예능프로 나와서 어리바리했던 모습이 생각나서요.
A 거 보세요. 언니도 저에 대한 편견 있으신 거잖아요. 똑똑하지 않아 보이는 애가 책 냈다니까 뭐지? 그런거요.
Q 음, 딱히 그런 뜻은 아닌데.
A 전요. 지식이 많은 사람만 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지금도 유식하지 않고, 모르는 거 많아요. 그렇지만 모자라고 빈틈 많은 저 같은 사람도 조금씩 지혜로워지고 아픔을 치유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을 책으로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 글쓰는 거 되게 좋아했구요. 이번 책은 3년동안 끄적끄적 적어놨던 것들 정리한 거에요.
Q 강의도 많이 다닌다면서요?
A 네. 강의 가서도 이렇게 시작해요. "제가 지식이 많았다면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과 오히려 공감하면서 힐링되지 않을까요?" 하면 다들, 와, 웃고 재미있어 하세요.
Q 그러러면 공부 많이 해야겠네요.
A 배우고 싶은 게 많아서 대학원도 가고, 연기수업도 받고 영어 배우고, 기타도 배우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도 하고, 뭘 많이 배우러 다녀요. 어렸을 때 그런 부분들이 다 채워졌었다면 사는데 재미 없을 거 같아요. 남들이 뭐라고 해도 전 잘 살아온 거 같아요.
Q 오늘 아침 트위터에 '오랜만에 신문으로 날 만나니 새롭네. 신상도 좋지만 아날로그가 참 좋다'란 글 올렸던데, 신문도 열심히 읽어요?
A 신문 보기 시작한 게 1년 정도 됐어요. 이런 얘기 들었어요. 진짜 깊은 지식을 알려면 신문을 읽어라. 근데 진짜 그렇더라구요. 신문 보면서 정치나 사회이슈에 관심이 많이 가고. 사회 돌아가는 거에 대해 안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세상과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어요. 어른들이 왜 신문 보시는지 알게 됐구요. 그래서 조금 더 신문 보는 습관 들이려고 하죠. 아, 아빠가 데뷔 때부터 저 기사 다 스크랩해주셨어요. 가끔 보면 예전 생각도 나고, 참 좋아요.
Q 오늘의 운세도 재미있어요.ㅋㅋ
A ㅎㅎ. 요즘 신문 보면서 느끼는 건데 기자라는 직업이 되게 멋지더라구요. 쪽기사인데 눈물 찔끔나는 감동적인 기사 쓰시는 분. 어떻게 알고 이런 취재를 했을까, 뭉클해지는 미담 기사 쓰신 분, 만나보고 싶어요. 그런 '작품'을 기록하는 거에 대해 막 물어보고 싶고. 주변에선 기자는 조심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으하하.
Q 도 닦은 거 같아요.
A 으흐흐. 저처럼 온갖 구설에 시달려보세요.
Q '다이어트의 아이콘' '각도의 중요성?' 그런거?
A 얼마 전에 엑스파일 사건 있었잖아요. (목소리를 높이며) 진짜, 찌라시에 대한 특집기사나 철저 해부 이런 거 좀 하셔야되는 거 아니에요? 이건 나라에서 나서서 대책을 세워야하는 일인 거 같아요.
Q 엑스파일 읽어봤어요?
A 그럼요. 저랑 그닥 친하지 않은 분이 조심스럽게 '솔비씨 이거 알고 있어요?' 하고 보내주셨어요. 정말이지, 그런게 연예인만 죽이는 게 아니라 주변인까지 다 죽이는 거잖아요. 무기 없는 살인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요. 세상 살면서 좋은 말 하기도 모자란데 그렇게 남을 욕보이면서 살면 행복할까요?
Q 그래도 이번엔 피해 연예인들이 대처를 잘해서 해결 빨리 된 거 같아요.
A 네. 저희끼리 뭉치니 되더라구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연예인이란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가지는 적대감이 참 무섭단 걸 다시 깨달았어요. 연예인들을 다른 세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저도 집에 가면 평범한 회사원의 딸이고, 제 직업만 연예인인 건데요.
Q 대학원에선 뭘 공부하려고요?
A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대중음악학과 대중음악 제작 경영 석사과정이에요. 진짜 길죠? 뮤지컬 학과 나왔으니까 대중음악 자체에 대해 좀 더 깊게 공부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연예인들 멘탈 관리쪽 공부해서 그런 과를 만들고 싶어요. 연예인들에게 노래 연기 가르쳐주는 곳은 많지만 멘탈 관리해주는 곳은 별로 없어요. 슬럼프에 빠져 위기가 왔을 때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법, 힘을 길러줄 수 있는 것들 공부해서 만들고 싶어요. 요즘 TV 보다가도 어린 친구들 얘기하는 거 보면 아, 지금 좀 안좋구나. 건강하게 이겨내야할 텐데, 걱정되고 해요.
Q 노래는 안해요? 요즘 방송인으로만 활동하던데.
A 아, 3월에 앨범 낼 거에요. (지금은 끝났지만) <히든싱어> 는 저한테 많은 걸 깨우쳐준 프로에요. 거기 나온 분들 보면서, 어렸을 때 가수의 꿈을 키워서 가수가 됐지만, 가수가 되고서 내가 많이 노력하지 않았던 거에 대한 반성도 했고. 막연한 환상보다는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췄을 때 가수가 됐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됐어요. 지금 내 자리에 감사하게 됐고요.
Q 타이푼으로 데뷔했던 거에 대한 후회가 있어요?
A 저 길미랑 R&B 쪽으로 가수 준비했었잖아요. 만약 그때 계속 길미랑 R&B 했으면 어떤 가수가 됐을까.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당시엔 빨리 가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타이푼이란 댄스그룹에 합류한 거였지만요. 요즘 들어서 급하게 가지 말자. 인생은 길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10년 정도면 찾아온다. 묵묵하게 가다 보면 포텐 터지는 날이 있을 거야. 이런 깨달음을 얻었잖아요. 그래도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Q 권지안다운 게 뭐라고 생각해요?
A 빈틈 많고 모자란 인간이 나인데, 그 부분에서 포장하려고 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어요. 열두번도 더 울고 싶을 때도 있었고, 자신감 있게 살려고 하지만 우울할 때도 있었구요. 그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더니 그 순간부터 용기 났고 도전들이 즐거워졌고, 채워가려는 게 재밌어졌어요. 노래할 때는 감동을 주고 싶고, 방송할 때는 웃음을 주고 싶고, 그림으로는 치유를 돕고 싶고, 글로는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 그게 나다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