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선수는 ‘전설’이 되고,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선수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전자와 후자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선수들도 있다. 짧지만 강렬한 ‘정상의 맛’을 경험하고 두 번 다시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한 선수들이다.
메이저리그(MLB) 마크 프라이어(34·당시 시카고 컵스)는 ‘단 한번 핀 꽃’이라 불린다. 프라이어는 지난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번으로 시카고 컵스에 지명됐다. 그는 데뷔 2년차인 2003년, 30경기에 선발 등판해 18승 6패 평균자책점 2.43, 245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프라이어는 강속구와 빼어난 변화구, 제구력까지 겸비하여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아킬레스건과 허리 부상에 시달렸고, 2006년 어깨부상 이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결국 지난해 은퇴를 선언했다.
야구에서 데뷔 첫해 좋은 활약을 펼친 신인이나,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기록한 선수들은 어김 없이 “‘반짝’하는 선수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33년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부상과 혹사, 불의의 사고 등 저마다의 사연으로 ‘반짝'할 수 밖에 없었던 선수는 누가 있을까.
◇ 82년 OB 베어스 박철순 24승 4패 평균자책점 1.84
박철순(58)은 한 시즌 성적에 자신의 허리를 바쳤다. 그는 OB 소속으로 프로야구 원년에 24승 4패 평균자책점 1.84를 기록했다. 단일 시즌 22연승을 기록했고, OB의 원년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마운드에는 박철순이 있었다. 프로야구 초대 MVP는 물론 박철순의 몫이었다. 82년 박철순은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를 가릴 것 없이 224이닝을 던졌다. 전체 팀 수비이닝의 30%를 책임지는 혹사와 팔을 아래로 늘어뜨렸다가 공을 뿌리는 특유의 투구 폼 탓에 고질적인 허리통증에 시달렸고,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당시 OB의 감독이었던 김영덕 전감독은 고장 난 허리에 진통제를 맞으며 한국시리즈에 등판한 박철순을 떠올리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말렸을 것이다. 감독으로서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박철순은 부상의 악령 속에서도 원년 이후 12시즌 동안 52승을 더 올리며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원년만큼의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한 해는 없었다.
◇ 82년 롯데 노상수 14승 19패 평균자책점 2.94
80년대초 동네야구에서 사이드로 공을 던지면 ‘노상수 흉내를 낸다’고 했다. 노상수(56·현 개성고 감독)는 프로야구 원년에 14승(19패)을 올리며 탈삼진왕(141개)까지 거머쥔 롯데의 사이드암 투수였다. 그는 롯데의 시즌 개막전(해태전) 선발투수로 등판했고 승리투수가 됐다. 원년 롯데가 올린 31승중 절반에 가까운 승수를 책임진 에이스였다. 노상수의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것은 군제대 후 였다. 노상수는 "그때는 지금처럼 프로선수들이 상무에서 뛸 수가 없었다. 광주 예비군 관리대대에서 일반병으로 복무해 개인 연습을 할 처지도 못 됐다.”고 말했다. 86년 다시 마운드에 올랐지만 예전의 노상수가 아니었다. 군에 복무하던 기간에 프로야구의 수준이 급격히 올라간 점도 그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 결국 노상수는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은퇴를 선언했다.
◇ 83년 삼미 슈퍼스타즈 장명부 30승 16패 평균자책점 2.34
삼미 장명부(작고)는 83시즌 30승 1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4를 기록했다. 단일 시즌 30승은 ‘영원히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라 불린다. 당시 팀 당 경기가 100경기인 가운데 장명부는 무려 60경기에 나섰고, 427⅓이닝을 소화하는 유례없는 혹사로 인해 이듬해부터 그의 성적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승리수당을 약속했다가 번복한 삼미 사장과의 마찰로 인해 의욕을 상실했다는 설도 있었다. 그는 84년 13승을 기록했지만 20번이나 패배했으며 85년 기록한 25패(11승)는 역대 단일 시즌 최다패로 역시 ‘영원히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꼽힌다.
◇ 86년 MBC 청룡 김건우 18승 6패 평균자책점 1.81
김건우(51)는 86년 1차 1순위로 MBC에 입단했다. 고교시절(선린상고)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할 만큼 타격에 재능을 보였으나, 프로에서는 투수로 활약했다. 김건우는 데뷔 첫 경기에서 청보를 맞아 1피안타 완봉승을 거뒀으며 시즌 18승 6패 평균자책점 1.81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이듬해에도 후기리그 중반까지 12승을 거두며 호투를 이어갔지만 시즌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집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뺑소니 차량에 치여 양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2년의 재활 끝에 다시 마운드에 섰지만, 예년의 기량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후 김건우는 타자로 전향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끝내 데뷔 첫해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다.
◇ 94년 태평양 돌핀스 김홍집 12승 3패 평균자책점 3.20
김홍집은 93년,1억2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태평양에 입단했다. 당시 구대성, 이상훈과 함께 ‘좌완 빅 3’로 불리며 특급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다. 데뷔 첫해 7승 8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김홍집은 이듬해 12승 3패를 기록하며 승률왕(0.800)에 올랐다. 당시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홈 경기에만 출장하며 달성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빛났다. 그러나 결국 군복무가 김홍집의 어깨를 고장냈다. 김홍집은 이틀에 한번 꼴로 밤샘 보초를 섰다. 인천 홈경기에 출전하고, 원정경기는 휴가를 받아 등판하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결국 부상을 얻고 말았다. 투구시마다 통증에 시달리는 고질적인 부상으로 94년 이후 9시즌 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채 2003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 94년 LG 인현배 10승 5패 평균자책점 4.19
LG는 94년 ‘신바람 야구’를 내세워 통합우승에 성공했다. 정규시즌 81승(승률 0.643)에 알토란 같은 10승을 보탠 투수는 팀의 4선발 인현배(43)였다. 인현배는 이상훈(43·현 고양원더스 코치)·김태원(50)·정삼흠(53·현 부천고 감독)으로 이어지는 당시 LG의 막강 투수조에서 신인의 패기를 보여줬다. 당시 언론에서는 ‘LG 이상훈의 스트레이트 펀치에 김태원의 훅, 정삼흠의 어퍼컷에 정신 못 차리는 팀들이 인현배의 카운터펀치에 맞았다’고 표현 했다. 인현배는 6월 17일 해태전에서 통산 30번째 완봉승을 노리던 선동열(51·현 KIA감독)과 맞대결을 펼쳐 되려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첫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듬해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잦은 부상에 신음하다가 2000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인현배의 통산 승수는 데뷔 첫해에 올린 10승 그대로이다.
◇ 01년 SK 신윤호 15승 6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3.12
신윤호(39·SK)는 94년 고졸 신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1억원의 몸값을 받으며 LG에 입단했다. 팀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각광받았으나, 데뷔 후 5시즌에서 2승을 올리는데 그쳤다. 01시즌에 이광은(59) 감독이 중도하차하고 김성근(72·현 고양원더스 감독) 수석코치가 1군 대행으로 선임된 이후 신윤호는 잠재력을 뿜어냈다. 70경기에 등판해 15승 6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하며 다승,구원,승률 1위를 차지했고 그해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했다. 군복무기간을 포함 데뷔 후 6년만에 만개한 기량이었지만, 6년간 던진 이닝의 약 1.5배 (144이닝)를 한해에 던진 후유증이 찾아왔다. 01년 이후 다시 6년간 부진한 성적을 보이다가 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어 김성근 감독의 SK로 이적했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를 선택했다. 야구에 대한 미련이 남은 신윤호는 지난해 현역복귀를 결심하고 SK에 입단하여 부활을 꿈꾸고 있다.
◇ 09년 롯데 조정훈 14승 9패 평균자책점 4.05
롯데 조정훈(29)은 2005년 2차 1라운드 1순위로 롯데에 입단했지만 데뷔 후 4년간 불펜과 2군을 오갔다. 2009시즌에는 풀타임 선발을 보장받으며 손민한(39·NC)을 대신해 ‘롯데의 에이스’역할을 했다. 27경기에 나와 14승을 거둬 다승왕에 올랐다. (당시 KIA 로페즈, 삼성 윤성환과 공동) ‘리그 최고의 포크볼’을 구사하던 조정훈은 175개의 탈삼진을 기록해 당시 한화 류현진 (188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타자들을 농락하던 명품 포크볼은 조정훈의 팔꿈치를 앗아갔다. 포크볼은 관절과 인대에 무리를 주는 ‘악마의 변화구’라 불린다. 조정훈은 2번이나 수술대에 올랐고 2014년 프로야구 롯데의 등록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채 현재 신고선수 신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