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기념물은 탄생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관심과 애정을 지닌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알게 모르게 닿아 있다.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도 그렇다.
광주광역시는 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시민야구 대축제를 열고 신구장 공식 개장식을 가졌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1만5000여 명의 시민이 찾아 새로운 명품구장의 탄생을 반겼다. 홈팀인 KIA 선수단은 이날 대구에서 삼성과 시범경기를 해 참석하지 못했다.
약 99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챔피언스필드는 2011년 1월 착공해 3년간의 공사 끝에 2만2000석 규모로 지어졌다. 오는 15일 두산과의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치른다. 정규시즌 첫 경기는 4월1일 NC전이다.
야구장에 성화대가 있는 이유
프로야구에서 10번이나 우승한 타이거즈의 홈 구장으로 탄생한 챔피언스필드는 신축이 아니라 개축이다. 새롭게 짓겠다고 했으면 개장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챔피언스필드 외야에 무등종합경기장 시절 성화대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성화대는 기존 종합운동장을 야구장으로 보수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야구장을 짓기 위해서는 아무리 저렴하게 지어도 땅값을 제외한 건축비만 최소 1000억원이 소요된다.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KIA 타이거즈가 일정 부분(300억원)을 감당했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인 광주광역시(396억원) 재원과 국비(298억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지자체 비용으로 구장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체육시설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비롯한 관계 법령에 따라 국가 차원의 타당성 조사와 국회 심의 등을 거쳐야 한다. 그랬다면 어쩌면 사업 승인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관계자들은 묘안을 짜냈다. 신축이 아니라 기존 무등경기장을 보수하면 여러 단계의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이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에게 협조를 구했고, 주무부처인 문화관광체육부의 유인촌 장관도 개보수 사업에 제동을 걸지 않아 신축이나 다름 없는 야구장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정운찬 전 총리(2009년 9월~2010년 8월)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총리 인사청문회 때 가장 까다롭게 다그쳤던 강운태 의원이 광주시장에 당선(2010년 6월)되고 얼마 후 나를 찾아와 광주야구장 건립에 협조를 간곡히 요청했다. 개인적으로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고, 시민들의 관람문화 서비스에 지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 총리실에 강력히 말했다”고 밝혔다.
5.18 민주묘역과 월드컵구장
광주월드컵구장과 5.18 민주묘역도 챔피언스필드 개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5.18 민주묘역은 2006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며 국가에서 관리하게 되면서 땅 소유자 변경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광주광역시는 시유지인 민주묘역 터와 국유지인 광주무등경기장 땅을 대토하는 형식으로 맞바꿨다. 무등종합경기장이 국유지로 남아 있었다면 땅 문제로 인해 광주시가 현재의 위치에 야구장을 지을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난관 끝에 사업 추진이 확정되자 이번에는 무등경기장을 사용하는 지역 육상인들이 ‘훈련장과 경기장을 빼앗길 수 없다’며 들고 일어났다. 이때 나온 대안이 육상 훈련장을 광주월드컵구장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광주구장을 육상 트랙이 없는 축구 전용구장으로 지었다면 불만에 가득찬 육상인들을 설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광주 지역의 한 육상인은 “이상국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과 김응식 교수(조선대 체육학과)님이 나서서 설득하지 않았으면 육상인들의 애환이 서린 무등경기장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회고했다. 이상국 전 총장은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 출신이다.
챔피언스필드 탄생의 숨은 공로자
광주광역시는 챔피언스필드 개축 이전인 2009년 10월 민자 유치 형태의 돔구장 건립을 추진했으나 응모하는 기업이 없어 무산됐다. 이전에도 야구장 신축 공약을 공수표로 날린 바 있는 광주시는 2010년 6월 시장이 바뀌면서 운동장 개축으로 급물살을 탔다. 유영구 당시 KBO 총재(2009년 2월~2011년 5월)와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 이상국 전 총장 등이 광주시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상국 전 총장은 “이용일 대행의 조언과 소장 자료가 큰 도움이 됐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야구장 건립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대동하고 후쿠오카돔과 히로시마구장 등 일본 구장을 다섯 번이나 답사하며 설득했다”고 밝혔다. 히로시마 구장은 광주같은 지방 구단이 본받아야할 가장 모범적인 야구장으로 꼽힌다.
이 총장은 또 “챔피언스필드를 지으면서 팬들이 움직이거나 식사를 하면서도 볼 수 있는 등 관중편의적 시설에 중점을 두고, 기존 무등야구장을 헐지 않는 광주광역시의 결정에 야구인들은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