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최희섭을 시작으로 해외 스포츠 중계를 한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2006~2007시즌에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활약하던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을 중계했고, 이후에는 메이저리그 중계를 많이 했다. EPL을 중계하던 시절 한준희 해설위원이 해 준 조언이 있다. "'더 선(the sun)'은 절반만 믿어라."
'더 선'은 영국 스포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체다. 이적과 스캔들 같은 사안들을 소위 '막' 던진다. 그러다 특종이 걸리기도 한다. 한 위원이 '더 선'을 절반만 믿어야 한다고 말한 건 확인되지 않은 무분별한 정보 때문이다.
필자는 메이저리그 중계를 준비하면서 정보가 필요할 때는 구글을 검색한다. 수많은 뉴스 사이트가 뜨지만, 단 한 번도 클릭하지 않은 곳이 있다. 블리처 리포트(Bleacher report)이다. 'b/r'로 알려져 있는 이 사이트는 스포츠 기자 또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블로거와 아마추어 팬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 올리는 사이트다.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논거가 부족하고, 자신의 의견을 나열했을 뿐이다. 따라서 국내 매체들이 블리처 리포트의 내용을 인용하는 데 조금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사에 외부 의견을 빌리는 건 근거를 얻고자 하기 위함이다.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기자가 판단을 해야 한다. 하지만 블리처 리포트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나 싶다. 국내 매체들이 블리처 리포트까지 인용하는 건 외부의 평가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빅 매치가 열린 뒤 포털에 걸린 기사를 살펴보면 빠지지 않는 게 해외 반응이다. 외부 평가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주가 돼서는 안된다고 본다.
블리처 리포트는 한 달에 1억 뷰가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수치다. 필자는 류현진과 추신수가 1억 뷰에 큰 공을 세웠을 거라 자신한다. 국내 매체들이 류현진의 'RYU', 추신수의 'CHOO'가 적힌 글을 발견하면 모두 인용하기 때문이다. 류현진, 추신수라는 단어는 국내 온라인 매체에는 '돈'이다. 최근엔 'SB네이션'이 언론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 블리처 리포트와 비슷한 사이트이지만 팬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하다. 류현진과 추신수에 대한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사이트를 기사에 인용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필자는 블리처 리포트를 언론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2012년, 생각의 기준이 애매해진 사건이 일어난다. 허핑턴 포스트(이하 허핑턴)가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이다. 허핑턴은 기본 성격이 블리처 리포트와 비슷하다. 다양한 칼럼니스트가 집필하는 블로그로 정치·비즈니스·엔터테인먼트·생활·환경 운동·세계 뉴스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허핑턴이 가장 먼저 전면에 내세운 칼럼니스트는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이다. 허핑턴은 그의 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런 허핑턴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획기적인 사건으로 온라인 매체가 제도권에 올라갔다는 걸 보여줬다.
블리처 리포트가 스포츠의 허핑턴이 될 수 있을까. 아직 부족하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타임워너가 블리처 리포트를 1900억원에 인수한 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블리처 리포트 내에서 메이저리그와 NBA(미국프로농구) 등 프로 스포츠에 대한 글은 모두가 알 수 있는 수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풋볼과 대학농구 쪽은 분석이 꽤 자세하다. 누군가는 거기에서 매일 매일 검색하며 글을 읽고 있다. 언론의 기능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아직 미국 프로 스포츠에 대한 내용은 인용할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필자는 ESPN와 CBS, MLB.com을 주로 참고한다. 그리고 빼놓지 않는 게 지역 매체이다. 지난해 추신수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빠른 소식을 전한 건 신시내티의 지역 신문이었다. 류현진 역시 LA타임스에서 다각도의 분석이 나왔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취재한 걸 기사로 썼기 때문에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신뢰도 있는 매체를 인용하자. '클릭'을 위해 개인 의견을 적은 블로그까지 인용하는 건 팬들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평가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눈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