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잘못 만든' 영화다. 사건과 사건의 연결고리가 느슨하다 못해 툭툭 끊어진다. 일단, 스릴러로선 불합격이다. 처음부터 스릴러를 표방했던게 아니라 휴먼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던거라고 변명한다고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코미디 역시 억지스럽다. 각 캐릭터를 부각시키기위해 만든 드라마도 지루하다. 연출 자체가 잘못됐다. 이민기·김고은 등 배우들의 열연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몬스터'는 살인마 태수(이민기)와 지적 장애인 복순(김고은)의 맞대결을 그린 영화다. 홍보문구에는 살인마와 '미친년'의 대결이라 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극중 김고은이 연기한 복순은 '지적장애인'이지 '미친년'이 아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민기가 김고은의 친동생을 죽이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김고은은 복수를 하겠다며 이민기를 찾아나선다. 사실 이 정도의 기본적인 줄거리만 봤을때 '몬스터'는 참 끌리는 영화다.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싸움이라는 사실 만으로 그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포스터 속 김고은의 얼굴과 야비해보이는 이민기의 눈빛 역시 관람 욕구를 자극한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딴판이다. 스릴러라기보다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인데다 두 인물간의 대결보다 각 캐릭터의 개인사에 집중한다. 연출자 황인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던 '시실리 2km', 또는 황감독의 데뷔작 '오싹한 연애'처럼 코미디와 스릴러를 변주하면서 여기에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시도를 한 셈이다. 일단 시도는 좋다. 이미 '오싹한 연애'를 통해 호러와 로맨틱코미디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으니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법도 하다. 그러나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의 도전은 '과욕'일 뿐.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운동을 하다 근육과 관절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다. 황인호 감독 역시 과욕을 부리다 부작용만 낳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럼없이 살인을 일삼던 이민기의 '역사'를 설명하고 가족 안에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괴물'같은 이민기를 이용하고 심지어 죽이려는 가족들, 그런 와중에도 형과 어머니로부터 사랑받고 싶어하는 이민기의 모습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김고은의 경우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과정을 강조했다. 순진하고 착하지만 아이처럼 '자기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자아내고 '살인마와의 맞대결도 가능한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제대로만 해냈다면 잘 만들어진 캐릭터 영화가 탄생했을 터. 그러나, 캐릭터에 대한 설명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에 대한 묘사가 허술해졌다. 두 주인공의 싸움은 시작되자마자 밋밋하게 끝나고, 이후 다시 만나 혈전을 펼치기까지 긴장감 없이 억지웃음을 끌어내는 시도만 반복된다. 영화의 재미가 정점에 달해야할 부분이 마치 버라이어티쇼의 코믹 단막극처럼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릴러와 블랙코미디를 변주해보겠다는 시도는 좋다. 그리고 두 주인공간의 싸움보다 각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해보겠다는 기획 역시 받아들일만하다. 하지만, 인물에 집중하려면 그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좀 더 치밀하게 묘사해 관객으로 하여금 매력을 느낄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 결과적으로 '몬스터'는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단면만 부각시켜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캐릭터의 매력이 부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과장된 설정을 남발해 현실성을 떨어트렸다.
연출은 실패했지만 배우들의 노력은 인정해줄만하다. 데뷔후 처음으로 살인마를 연기한 이민기는 살기 넘치는 눈빛에 여유로운 표정으로 독특한 느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지적장애인을 연기한 김고은 역시 아역배우와 함께 울고 웃으며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개성강한 캐릭터를 구축한 배우들의 노력에도 감독의 과욕이 화를 부른 셈이다.
●별점 5개 중 1개 반
꼭 보세요 : 이민기와 김고은의 파격적인 변신을 보고 싶으신 분. 버라이어티쇼의 단막극 수준의 깊이감을 오히려 좋아하시는 분. 누가 뭐래도 '낭만자객'을 재미있게 봤다고 생각하시는 분.
보지 마세요 : 치열한 스릴러 장르를 기대하시는 분. 황인호 감독의 전작 '오싹한 연애' 또는 각본을 담당한 '시실리 2km' 정도의 완성도와 재미를 기대하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