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이 발표된 가운데 홍명보호를 이끌 주장은 누가될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8일 파주NFC에서 최종엔트리 발표 자리에서 주장 관련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주장을 바꿔왔는데 본선에서는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홍 감독은 "머릿 속에 생각은 하고 있지만 발표 시기가 이르다. 그 선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소집된 다음에 발표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홍 감독이 염두에 둔 주장은 구자철과 이청용이 유력하다.
지난해 6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구자철과 이청용, 하대성(29·베이징 궈안), 이근호(29·상주) 등에게 주장을 맡겼다. 해외파를 포함한 정예 멤버가 구성됐을 땐 구자철과 이청용에게 주장 완장을 채웠다. 기량과 리더십을 모두 갖춰야 주장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가교 역할은 물론 벤치 멤버들의 애환까지 이해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모나지 않은 성격의 구자철과 이청용은 실력에 경험까지 갖춰 주장으로 제격이다.
구자철은 홍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다. 페르소나는 영화계에서 감독의 속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표현해내는 단짝 배우다. 마틴 스코시지-로버트 드니로, 봉준호-송강호 등이 대표적이다. 축구계에서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라이언 긱스(맨유), 최강희 전북 감독-이동국(전북) 등이 있다.
구자철은 홍 감독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선수다. 리더로서 조직력과 콤비네이션, 전방 압박 등 홍 감독의 축구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다. 홍 감독은 자신이 지휘한 200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 올림픽 모두 구자철 왼팔에 주장 완장을 채웠다. 구자철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오스트리아 전지훈련까지 갔다가 최종 엔트리에 탈락해 실의에 빠져 있었다. 홍 감독은 구자철에게 전화를 걸어 "넌 우리나라 최고가 될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하지 말라"고 위로할 만큼 구자철을 아낀다.
아울러 구자철은 홍 감독이 추구하는 '원 팀(one team)'을 만들 수 있는 적임자다. 구자철은 아줌마처럼 주변을 세심하게 챙긴다고 해서 별명이 '구줌마(구자철+아줌마)'다. 2007년부터 4년간 K리그 제주에서 활약한 구자철은 독일에서도 친정팀 제주 경기를 챙겨볼 만큼 K리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국내파와 해외파의 간극도 줄일 수 있다.
지난 3월 그리스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구자철은 후반 9분 역습 상황에서 손흥민(22·레버쿠젠)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구자철이 주장의 품격을 보여줬다' 등 칭찬 기사가 쏟아졌다.
홍 감독은 런던올림픽 멤버를 브라질월드컵 주축으로 발탁했다. '원팀'을 강조하는 홍 감독 성향을 볼 때 런던올림픽에서 리더십 검증을 마친 구자철이 주장경쟁에서 한발 앞서있다. 이청용도 "현 대표팀에는 아시안게임·올림픽에서 많은 선수들과 코치진이 올라왔다. 스타일을 잘 알고, 코치진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자철이가 최고의 주장감이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후 지난해 11월 스위스와 평가전에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찼다. 이청용은 '전 캡틴' 박지성(33·에인트호번)처럼 조용하지만 당당한 리더다. 박지성이 가장 아끼는 후배답게 비슷한 면이 많다. 사실 이청용은 전면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박지성도 27세였던 2008년 처음으로 대표팀 주장 제의를 받았을 때 난색을 표하다 수락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리더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이청용은 이미 박지성처럼 리더십을 발휘했다. 지난해 10월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를 거칠게 수비하며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청용의 측근은 "대표팀의 다른 선수들이 네이마르를 거칠게 막는 역할을 부담스러워 해서 이청용이 총대를 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했을 때 쓴소리를 던진 선수도 이청용이었다. 그는 지난해 3월 카타르전 직후 "대표팀에 대화가 부족하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도 얻었다.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껄끄러운 말도 할 줄 안다. 지난해 11월 스위스와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장면도 결정적일 때마다 한 방씩 터뜨렸던 '캡틴 박'을 연상케 했다. 앞서 기성용(25·선덜랜드)은 "청용이가 지성 형의 뒤를 이어야 한다. 등번호도 지성 형의 7번을 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홍명보,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이운재,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는 박지성이 주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