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8월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구자철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고 있다. (사진=올림픽 사진 공동 취재반)
주장 완장의 무게감은 역대 어느 월드컵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조직원 개개인의 역량을 끌어내는 능력은 이전 월드컵팀 주장들과 견줘 부족함이 없다. 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이 애제자 구자철(25·마인츠)에게 또 한 번 브라질월드컵대표팀 주장 완장을 맡긴 이유다.
홍 감독은 21일 선수단 미팅을 통해 구자철의 주장 선임 소식을 알렸다. 아울러 부주장 역할은 이청용(26·볼턴)에게 맡겼다. 공히 강한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는 유형의 선수들이다. 홍 감독이 구자철을 주장으로 선임한 건 '나서지 않는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점을 높이 산 결정이다. 2002 한·일월드컵(홍명보)·2006 독일월드컵(이운재)·2010 남아공월드컵(박지성) 등 카리스마와 경험을 겸비한 선수들이 완장을 찼던 이전과 비교하면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동료들의 강점이 잘 드러나게 도와주는 역할에 강점이 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는다. 선수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 역할에 만족한다. 홍 감독이 2009년 20세 이하 대표팀부터 2011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 런던올림픽 등 홍 감독이 대표팀을 이끈 모든 대회에 주장으로 나선 이유다. 런던올림픽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홍 감독은 '딸이 있으면 사위로 삼고 싶은 선수 1순위'로 서슴 없이 구자철을 꼽으며 신뢰를 보여줬다.
홍 감독이 추구하는 대표팀 운영 기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홍 감독은 구자철의 주장 선임 결정을 알리며 "한 선수 위주로 돌아가는 팀 분위기를 원하지 않는다. 23명 최종 엔트리 멤버들 모두가 저마다의 리더십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23가지 리더십을 하나로 모아 '홍명보호 리더십'으로 완성한다는 게 홍 감독의 대표팀 운영 철학이다.
이는 경험에서 비롯된 결론이기도 하다. 홍 감독의 한 측근은 "2002년 주장으로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 홍 감독이 부담감에 남몰래 힘들어했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경기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며 후배들까지 챙기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후 홍 감독은 한 명의 선수가 선수단 전체를 이끄는 방식에 대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동료 선수들이 가진 재능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구자철식 리더십'은 박지성이 브라질월드컵의 핵심 화두로 제시한 '책임감'과도 일맥상통한다. 박지성은 월드컵 본선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에게 "선수 한 명 한 명이 강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은 "일사불란한 통제가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신세대 선수들은 자유로움 속에서 창의성을 끌어내는 데 익숙하다"면서 "홍 감독이 구자철을 주장으로 낙점한 것 또한 이런 방식에 가장 익숙한 선수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