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황재균이 23일 울산 KIA전을 앞두고 훈련을 마친 뒤 정훈에게 한 말이다. 정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 채 그라운드에 흩어져 있는 공을 모았다. 황재균 뿐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문호도 "정시카, 정시카"라고 불렀다. 기자가 둘에게 '정시카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동시에 답했다. "패대기 시구를 한 제시카와 정훈의 합성어에요."
정훈이 새 별명 '정시카'를 얻은 건 지난 21일 포항 삼성전에서 저지른 수비 실책 때문이었다. 삼성의 공격이 진행된 8회말 2사 1·3루 상황에서 1루 주자 이지영과 3루 주자 박해민이 이중 도루를 감행했다. 롯데 포수 용덕한은 이중 도루를 간파하지 못하고, 2루에 공을 부렸다. 그사이 3루 주자 박해민은 홈을 밟았고, 이지영은 런다운에 걸렸다.
실점 상황은 종료된 만큼 이닝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롯데 수비진은 이지영을 반드시 잡아냈어야 했다. 하지만 이지영을 몰던 2루수 정훈이 유격수 문규현에게 송구한다는 걸 그만 땅으로 꽂아버렸다. 정훈의 실책 덕분에 이지영은 1루에서 살았다. 실책을 저지른 정훈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동료들은 정훈의 패대기 송구가 마치 패대기 시구를 선보인 소녀시대 멤버 제시카와 같다고 해서 '정시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정훈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정말 '멘붕(멘탈 붕괴의 준말)'이었다"며 "공을 갖고 이지영을 몰았다. 그런데 이지영이 도망가다가 갑자기 나를 향해 돌아서더라. 유격수에게 송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서는 바람에 태그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손이 엉키면서 공을 땅에 던지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고개를 들 수 없더라"며 "별명을 겸허히 받아드리겠다.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훈은 이날 경기에서 실책을 만회하는 멋진 수비를 선보였다. 4회초 선두 타자 이대형의 중전 안타성 타구를 백핸드로 걷어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돌아서서 뛰어오른 뒤 송구를 했다. 앞으로 달려가는 속도를 이기지 못해 마치 농구의 '페이더웨이 슛' 같은 모습이었다. 정훈의 뿌린 공은 정확하게 박종윤의 미트에 빨려들어갔다. 까다로운 타자 이대형을 잡아내자 선발 유먼은 정훈에게 박수를 보내줬다. 자신의 말을 지킨 멋진 호수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