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을 되짚던 고창성(30·NC)이 빈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지난 1일 한낮의 광주 챔피언스필드는 온도가 30도 가까이 치솟았다. 훈련을 막 마친 고창성은 초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땀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2년 만에 승리 투수가 된 어제(5월31일)도 아버지가 광주에 오셨었어요. 제가 투수를 하는 한 계속 보러 오실거래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잘 던지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고창성은 지난달 31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전에서 666일 만에 구원승을 거뒀다. 두산 소속이던 2012년 8월3일 잠실 KIA전 이후 약 2년 만이다. 위급한 상황에 올라가 얻은 귀한 승리였다. NC는 선발 이민호가 4이닝 4실점 한 뒤 물러나자 총 5명의 불펜투수를 투입했다. 팀이 3-5로 역전 당한 5회 1사 1·2루에 세번째 투수로 나선 고창성은 2⅓이닝을 1피안타 2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첫 승을 거뒀다. 특히 필-나지완-이범호로 이어지는 KIA 클린업트리오가 포진한 6회에는 세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했다. 고창성은 "승리를 딴 것보다 중요한 것은 원래 내 공을 던질 수 있고, 찾았다는 점이다. 몸 상태가 좋을 때 나는 직구를 가장 자신있게 던진다. 어제 빠른공 구속은 최고 시속 143㎞에 그쳤지만, 구위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돌고 돌아왔다. 고창성은 2012년 11월15일 보호선수 20인외 특별지명으로 NC 유니폼을 입었다. 사이드암 고창성은 두산을 대표하던 투수였다. 낙차 큰 체인지업과 볼끝이 지저분한 직구를 앞세워 데뷔 2년차 이던 2009년 64경기에 출장해 16홀드 평균자책점 1.95을 올렸다. 2010년에는 22홀드를 거두며 2년 연속 홀드 부문 2위에 올랐고,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해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하지만 2011년 평균자책점 4.44에 그치는 등 슬럼프에 시달렸고 결국 이듬해 '베어스'를 떠났다. 새 팀에서도 시련은 지속됐다. 지난해 28경기에서 1홀드, 평균자책점 4.79를 기록했다. 패전 처리조로 나가던 그는 1군보다 2군에 머무는 날이 많았다.
달라져야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썼다. 투구폼을 수없이 바꿨다. 밸런스를 잡겠다며 팔 스윙도 고쳐봤고, 쉬는 날에는 등산에 몰두하기도 했다. 뭘 해도 달라지지 않는 고창성의 손을 잡아준 이는 김경문(56) NC 감독이었다. 고창성은 "점수 차가 크건 적건 타자들은 안타를 치고 싶어하고 반대로 나는 막으려고 노력한다. 마운드서 싸우는 건 같다"며 "감독님께서 1군에서 믿고 써주셨다. 그 사이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 내 공을 찾고 자신감을 얻었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음, 자신감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고창성의 아버지 고재신씨는 거동이 불편하다. 하지만, 두산시절부터 아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KTX를 타고 원정길에 오르곤 했다.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아들을 응원했다. 고창성은 "올 시즌에도 아버지가 매 경기 모두 오시고 있다. 예전처럼 잘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