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경(30)만큼 초고속 롤러코스터를 타 본 사람도 흔치 않다. 1999년 밀레니엄과 맞물려 대한민국을 뒤흔든 광고. 그 중심에는 임은경이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눈만 꿈뻑거리던 소녀는 어느덧 연기자로 전향했지만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인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임은경은 굴하지 않았다. 100억원 대작 '성냥팔이의 소녀' '여고생 시집가기'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 노력했지만 방송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2005년 중국드라마 이후 존재를 감췄다. 그렇게 10여년간 칼을 갈아온 임은경이 이제 다시 도약을 꿈꾼다. 어찌 보면 '재데뷔'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각오가 야무지다. 임은경은 "지금 데뷔한 연기자 중에는 'TTL 소녀'를 모르는 사람이 많겠죠. 저도 그만큼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임은경과 과거형 롤러코스터에 함께 타보자.
-참 오랜만이다.
"본의 아니게 대중 앞에 나설 기회가 없었다. 일부러 피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어디서 불러주지도 않았다. 최근 TV에 출연하며 자연스럽게 대중과 다시 친해지는 과정을 밟고 있는 듯하다."
-데뷔 얘기부터 들어보고 싶다.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이다. 천호동에서 이병헌선배님 팬사인회 기다리다가 지금의 사장님 눈에 띄었다. 사장님말로는 당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아이가 줄을 서 있는데 신기하게 생겼다고 하더라. 분명 남자같은데 치마를 입고 있었고 눈썹은 새까맣고…. 그때 마침 다른 유명 기획사서도 러브콜이 들어왔다. 집앞까지 찾아와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지만 먼저 나를 알아봐 준 지금의 사장님 손을 잡았다."
-원래 꿈이 연예인이었나.
"아니다. 연예계 관심도 없었다. 전혀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어릴 적엔 빨리 시집가고 싶었다. 교복도 벗고 싶고 집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데뷔했나.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캐스팅 돼 어리둥절했다. 어쨌든 무엇이라도 기회이지 않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 데뷔가 초대박이었다.
"너무 갑자기 확 떠버려서 어리둥절했다. 연예인이라는 것에 대해 무감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운게 많이 생겼다. 빵빵해진 내 인기라는 풍선이 어느 순간 터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서웠다."
-그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
"정작 나는 피부로 느끼지 못 했다. TV·신문, 심지어 버스정류장에도 내 광고가 계속 나왔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인기를 실감할 순 없었다. 당시 학교 친구들도 처음에는 나인지 몰랐다. 광고에 대한 모든 게 비밀에 부쳐지다보니 정말 친했던 친구 몇몇만 알고 있었다."
-다른 이동통신사서 눈독을 들였다던데.
"어느 날 모 대기업에서 비서실서 전화가 왔다. 거액의 돈을 줄테니 이적하라는 것이었다.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다. 그래도 처음 모델한 회사서 이렇게 키워줬는데 그쪽으로 넘어가는 건 아니지 않냐. 의리를 지키고팠다. 당시 할아버지 병원비가 800만원이었는데 광고 촬영으로 모두 지불했다. 그것만으로 뿌듯했다."
-정작 자랑도 못 하고 답답했겠다.
"신비주의를 지킨다는 각서를 쓸 정도였다. 그 사실을 어길 시 위약금을 물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3년 모델로 활동하다보니 나중에는 많이 알아보더라."
-데뷔가 최정상이었다. 이후 인기가 하락했음을 부정할 순 없을텐데.
"조금씩 조금씩 인지도와 인기 모두 떨어졌다. 2004년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 촬영 후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 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여의치 않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했는데 사람들은 보통 눈에서 사라지니 잊혀진다고 생각했나보다.
-사람들이 시선이 신경쓰였나.
"사람이다보니…. 신경쓰지 않으면 괜찮은데 주변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뭐하세요'라고 물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사실 마음 아프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첫 연기작이다.
"모든 분들이 그 영화에 대해 언급하길 망설인다. 당시 100억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지만 흥행에 성공하진 않았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겐 100억이상의 가치가 있는 큰 작품이다. 언제 그런 분들과 작업을 해보고 생활을 하겠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타이틀롤로서 힘들지 않았나.
"최선을 다했다. 모든 스태프들이 고생 많았다. 1년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것 자체로도 감사했다. 따가운 평가는 있을 수 있다. 입장차이가 다르다. 열심히했고 최선을 다했다. 누가 되지 않았다."
-이후 연기력 논란 꼬리표가 붙었다.
"첫 스타트 할때부터 마지막까지 남들이 뭐라고 해도... 연기에 대해서는 마무리한 거니깐 최선을 다했다고 나름대로 연기하고 싶다. 본 분들이나 판단해주는 사람들 입장에서 연기같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게 두렵진 않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질타나 충고들이 무섭거나 싫다고 했음 못했을 것 같다."
-중국 다녀온 이후 10여년간 작품이 없다.
"길다면 꽤 긴 공백기를 가졌다. 그런 상황은 주변 사람들까지 지치게 만들 정도로 힘들었다. 3~4년은 짜증과 우울함, 분노·슬픔 등 오만가지 감정으로 범벅돼 있었다. 사람들을 피말리게 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옆에서 격려해줬지만 하나도 위로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편안하게 즐기자. 마음을 놓자. 너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느꼈다. 다시 연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