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양상문 LG 감독은 투수 장진용(28)의 이름을 꺼냈다. 장진용은 2009년 이후 1군 등판 경력이 없었고, 올 시즌에도 줄곧 2군에만 있던 투수다. 그는 지난달 31일 1군에 등록돼 이튿날인 1일 목동 넥센전에서 ⅔이닝을 던졌다. 양상문 감독은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팀의 다섯 번째 선발투수로 활약할 수 있는 투수"라며 "장진용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이날 KIA전에서 장진용은 팀이 20-2로 크게 앞선 7회 선발 리오단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시속 140km가 채 안되는 직구를 던졌지만, 공에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14개의 공으로 세 타자를 처리한 장진용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더그아웃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젠 아프지 않다"는 말을 되뇌였다.
◇1차 지명 기대주
한때 그는 '암흑기' LG의 희망이었다. 배명고를 졸업하고 2004년 1차 지명을 통해 LG에 입단했다. 데뷔 이듬해인 2005년엔 당당히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다. 하지만 그해 4월22일 잠실 현대전에서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장진용은 "그 때 부상만 아니었다면 지금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고난한 야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장진용은 2008년까지 27경기에서 55⅔이닝 동안 2승 2패 평균자책점 6.95를 기록했다. 2009년 상무 입대 이후 그는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09년(10승)과 2010년(15승) 두 시즌 연속 2군(퓨처스) 북부리그 다승왕에 올랐다. 장진용은 "나는 1군 선수가 아니었다. 상무에서 기회를 받았고,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지지 않았다. 공을 많이 던지고 여러 타자를 상대한 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팔꿈치 통증으로 타자 전향
2011년 기대를 안고 팀에 복귀했다. 하지만 팔꿈치 통증이 찾아와 수술대에 올랐다. 2012년 김기태 당시 LG 감독은 그를 '히든카드'라고 말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장진용은 재활을 거쳐 공을 잡았지만, 통증은 쉽사리 가라 앉지 않았다. 결국 그해 장진용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에 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수술 불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의사는 재수술을 위해 다시 뼈에 구멍을 뚫을 경우 뼈가 깨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다 내려놓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떠올린 건 배트였다. 장진용은 고교 시절 타격에도 재능을 보였다.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타자 전향을 준비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다시 통증이 찾아와 방망이를 놓아야 했다.
◇6년 만의 1군 첫 상대는 박병호
장진용은 올 시즌을 앞두고 실전투구가 가능할 정도로 몸 상태가 돌아왔다. 올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11경기에 주로 선발로 나와 4승 2패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했다. 양상문 감독은 "재능이 있던 친구로 기억한다. 어떻게 던지는지 보고 싶어 1군으로 불렀다"고 했다.
장진용은 1일 넥센전에서 6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첫 상대는 홈런왕 박병호였다. 박병호는 장진용의 다음 해인 2005년 LG 1차 지명 선수다. 박병호는 최고 타자가 됐고, 장진용은 천신만고 끝에 그 자리에 섰다. 떨릴 법도 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맞으면 또 어떤가. 그저 후회없이 내 공을 던졌다"고 했다. 장진용은 박병호와 다음 타자 강정호까지 삼진으로 잡았다.
올 시즌 2경기에서 무실점 중인 그는 아직은 점수 차가 벌어진 경기에만 나가고 있다. 또 팀 사정상 다시 2군에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진용은 담담하다. 그는 "이젠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