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제 간신히 위기를 넘긴 것뿐이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BK'의 두 번째 선발 등판을 지켜본 스승과 아내의 평가는 이랬다.
김병현(35·KIA)이 지난 15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 6피안타 3실점 했다. 짧은 이닝이었으나 평소보다 최고 구속이 3~4㎞ 가량 더 나왔고, 시즌 최다인 90개를 던졌다. 선동열(51) KIA 감독은 "비교적 제 몫을 했다.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KIA는 김병현과 타선 지원에 힘입어 사직 7연패 고리를 끊었다.
그리고 이날, 김병현의 비상을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다린 이들이 있었다. 'BK'의 절정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허세환(53·현 인하대 감독) 전 광주제일고 감독과 인간 김병현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아내 한경민(33)씨다. 15일 밤 본지와 연락이 닿은 두 사람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피칭을 봤다고 했다.
허세환 감독 '표정에서 절실함이 느껴졌다'
허 감독은 김병현이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1995년 서재응-최희섭과 함께 50대 청룡기 우승을 일궜다. 김병현을 앞세운 광주일고는 당시 아마야구계 최강이었다. 허 감독은 "(김)병현이가 마운드에 서면 늘 든든했다. 그날은 이기는 날이였다"고 회상했다.
대학하계리그를 위해 광주에 내려와 있다던 그는 19년 만에 TV로 제자의 피칭을 지켜봤다. 허 감독은 "2회 0-2로 뒤진 상황에서 1점을 더 주는 과정이 아쉬웠다. 손아섭의 파울이 인정되면서 적시타를 허용했다"고 했다.
고교시절 김병현은 늘 자신만만했다. '너희가 내 볼을 쳐? 못 치지'라는 자신감이 읽혔다. 이날은 달랐다. 그는 "옛날과 다르게 눈빛이 너무 절실하더라. 바라보기가 안쓰러웠다. 오늘은 꼭 이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다행히 안치홍이 홈런을 치면서 승기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스승이 보는 김병현의 객관적인 구위는 어땠을까. 그는 현재가 아닌 더 나아질 수 있는 미래에 점수를 줬다. 허 감독은 "지금도 직구 볼 끝이 살아있었다. 130㎞ 후반에서 140㎞초반까지 기록했는데, 바깥쪽으로 꽂히는 볼끝이 상당했다. 볼 끝이 좋다는 건 그만큼 힘이 붙었다는 것이다"며 "변화구 제구는 아직 들쭉날쭉하다. 이제 두 번 선발 등판했다. 짧은 시작이다. 앞으로 기회를 더 준다면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고 평했다.
아내 한경민씨, '이제 겨우 위기 넘긴 것뿐'
남편이 사직 구장에서 공을 던지던 시각. 아내는 딸 민주양과 함께 집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한 씨는 "인터뷰하기가 조심스럽다. 그저 남편이 공을 던질 때마다 간절하게 기도하며 지켜봤다. 야구 선수의 아내로 사는 삶이 쉽지않더라. 하루 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함께 사는 사람이다. 서로 잘 안다. 한 씨는 "(병현씨가) 고향 팀에 간 뒤 정말 잘하고 싶어했다. 집에서 야구 이야기는 잘 안 한다. 그런데 요즘엔 많이 힘들어 보였다. 오늘 공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간절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마운드가 뭔지도 몰랐던 그녀는 결혼 4년여 만에 야구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4이닝 3실점을 한 남편의 피칭에도 들썩이지 않는다. 한 씨는 "공백도 있었고, 체력적으로 떨어진 부분이 있다. 이제 위기를 간신히 넘긴 것 뿐이다. 앞으로 병현씨다운 공을 던져주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