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발데라마의 후계자…강한 인상 남긴 하메스 로드리게스
콜롬비아 축구에 '엘 피베(El Pibe·꼬마)'를 넘어 엘 프린시피토(El Principito·어린 왕자) 시대가 왔다. 콜롬비아 공격형 미드필더 하메스 로드리게스(23·AS모나코)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콜롬비아 축구의 새 시대를 열었다.
로드리게스는 5일 끝난 브라질월드컵 8강까지 6골을 넣고 대회 득점 선두에 올랐다. 비록 팀은 8강전에서 브라질에 1-2로 패해 탈락했지만 사상 첫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이번 대회 스타로 떠올랐다. 8강전에서도 로드리게스는 후반 34분 페널티킥 골을 넣어 콜롬비아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경기를 마친 뒤 로드리게스는 못내 아쉬운 듯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로드리게스는 콜롬비아의 전설 카를로스 발데라마(53)가 후계자로 지목한 선수다. 사자의 갈기같은 금발 머리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발데라마는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콜롬비아 대표팀에서 111경기를 소화한 당대 최고 스타였다. 남미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1987), 남미 올해의 선수상(1987·1993) 등을 받으며 콜롬비아 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던 발데라마를 팬들은 '엘 피베'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발데라마는 월드컵에서 웃지 못했다. 세 차례 월드컵에 나섰지만 최고 성적은 1990년 이탈리아 대회 16강이었다. 펠레(74)로부터 우승후보로 지목받았던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특히 당시 미국과 2차전에서 자책골을 넣은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열흘 뒤 수도 보고타에서 총알 12발을 맞고 숨졌다. 콜롬비아 축구 최악의 참사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예선 탈락한 발데라마는 곧바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콜롬비아는 이후 16년동안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20년이 흘러 로드리게스가 발데라마의 못다한 꿈을 이뤘다. 2010년 포르투(포르투갈)에 입단하며 유럽무대에 데뷔한 로드리게스는 2013~2014시즌에 이적료 4500만 유로(약 622억원·추정)에 AS모나코(프랑스)로 이적해 가치를 높였다. 발데라마는 지난 2011년 대표팀에서 뛰는 로드리게스를 본 뒤 "더이상 콜롬비아 국민들은 엘 피베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다. 선수와 지도자를 하면서 그렇게 뛰어난 선수를 보지 못했다. 로드리게스가 우리가 그토록 찾던 그 아이"라고 극찬했다.
콜롬비아인들은 대회 전 '인간계 최강' 라다멜 팔카오(28·AS모나코)의 공백을 걱정했다. 팔카오는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7골을 넣어 콜롬비아를 16년만에 본선 무대에 올렸지만 지난 1월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본선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드리게스가 우려를 깨끗이 씻어냈다.
로드리게스는 골을 터트린 뒤 동료들과 흥겹게 춤을 추는 세리머니로 팬들도 즐겁게 했다. 로드리게스를 '어린 왕자(El Principito)'로 부르는 콜롬비아 팬들의 반응도 뜨겁다. 콜롬비아 축구팬 하이로 아파나도르 주니어는 "콜롬비아에서 24시간 걸리는 버스를 타고 오는 팬들이 있는데 하메스 덕분에 매우 행복하다. 하메스는 예쁘장한 얼굴 때문에 어린 왕자로 불린다"고 말했다.
벨루오리존치=김민규 기자, 김지한 기자 gangae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