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월드컵이 독일의 우승으로 끝났다. 월드컵 개막 전부터 내정 불안과 치안 문제 등을 일으켜 관심을 모았던 브라질월드컵은 정작 개막 후에 화끈한 공격 축구와 재미있는 승부가 연달아 펼쳐져 전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반면 2회 연속 월드컵 16강 진출을 노렸던 한국은 1무2패의 씁쓸한 성적만 남겼다.
10가지 키워드로 브라질월드컵을 결산해봤다.
전차군단
'전차군단' 독일이 마침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다. 독일은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1990년 이후 24년 만에 통산 4번째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독일의 우승은 정교하고 조직적인 시스템에 의한 축구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2006년 독일대표팀 수석코치를 지냈던 요아힘 뢰브 감독이 수년동안 쌓아온 조직 축구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브라질
이번 월드컵의 최고 키워드는 역시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1950년 이후 64년 만에 월드컵을 유치해 통산 5번째 월드컵 우승을 노렸다. 브라질은 조별리그에서 2승1무를 거둔 뒤, 16강에서 칠레, 8강에서 콜롬비아를 차례로 꺾으며 우승 가능성을 높여갔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독일에 1-7로 굴욕적인 대패를 당했고, 3-4위전에서마저 네덜란드에 0-3으로 완패해 씁쓸하게 대회를 마쳤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시민들은 '반(反)월드컵 시위'를 펼쳐 불안한 치안 상태를 이어갔다.
메시 그리고 네이마르
이번 대회 골든볼(최우수선수)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받았다. 메시는 이전 2차례 월드컵에서 1골을 넣는데 그쳤다. 이번 월드컵에선 조별리그에서만 4골을 터트리는 등 그동안 월드컵에서 못다했던 한을 풀어내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정작 토너먼트에선 침묵했고, 결승전에서마저 연장 후반 마지막 프리킥 기회를 놓쳐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메시 못지 않게 주목받았던 선수는 네이마르(브라질)다. 네이마르는 개막전 크로아티아전에서 2골을 터트리는 등 개인 첫 월드컵에서 4골을 넣어 브라질의 선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8강 콜롬비아전에서 후반 43분 후안 카를로 수니가의 무릎에 찍혀 척추 골절상을 입고 더이상 뛰지 못했다. 해당 상황을 두고, 양 국 마피아들까지 섬뜩한 신경전을 펼칠 정도로 후폭풍도 컸다.
골키퍼
이번 대회 최고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브라질월드컵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된 마누엘 노이어(독일)는 폭넓은 활동 영역과 빠른 판단에 의한 재치있는 움직임으로 '스위퍼형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으며 골키퍼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밖에도 케일러 나바스(코스타리카), 길레르모 오초아(멕시코), 팀 하워드(미국) 등 골키퍼들의 슈퍼 세이브가 유독 빛났던 월드컵이었다.
스리백
최근 들어 퇴물 취급을 받았던 스리백 수비는 브라질월드컵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조별리그에서 5-1로 대파하면서 변형 스리백을 사용했고, 코스타리카, 칠레 등도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데에 스리백이 한몫했다. 이들은 모두 3-4-3과 5-3-2를 오가는 변형 스리백을 사용했다. 수비를 두껍게 하면서 길고 정확한 패스로 최전방을 향해 볼을 배달하는 간결한 플레이로 재미를 봤다.
브라주카
이번 대회에는 총 64경기에 171골이 터져 경기당 평균 2.67골이 나왔다. 이는 4년 전 남아공월드컵(2.3골)에 비해 훨씬 높아진 수치였다. 많은 골 비결로는 브라질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덕분이었다는 평가도 많이 나왔다. 역대 월드컵 공인구 중 조각 수가 가장 적고 원 형태에 가까워 킥 정확도가 훨씬 높아지고, 그만큼 골키퍼들에게 힘든 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대회에선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가 6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핵이빨
우루과이 골잡이 루이스 수아레스는 상대 선수를 깨무는 기행으로 이번 대회 이슈메이커가 됐다. 수아레스는 지난달 25일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상대 선수인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유벤투스)의 어깨를 깨물어 FIFA로부터 A매치 9경기 출전 정지와 4개월간 축구 활동 금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같은 행동에 전세계 축구팬들은 드라큘라, 병따개 등 다양한 패러디물을 양산하며 수아레스를 조롱했다.
이변
1994년 이후 20년 만에 미 대륙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에선 각종 이변이 속출했다. 코스타리카는 '죽음의 조'로 평가받던 D조에서 우루과이, 이탈리아 등을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른 뒤, 16강에서도 그리스마저 꺾어 사상 처음 8강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또 남미의 콜롬비아, 칠레, 북중미의 미국, 멕시코 등도 나란히 토너먼트에 오르는 등 미 대륙 다크호스 국가들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물론 독일이 브라질월드컵 우승을 거둔 것도 이변이라는 이변으로 꼽힌다. 유럽 팀이 남미 대륙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1930년 첫 월드컵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리축구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이어 2회 연속 월드컵 16강을 노렸던 한국은 홍명보 감독 체제로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브라질월드컵에 참가했다. 그러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러시아와 첫 경기에서 1-1로 비기며 무난히 출발했지만 2차전 알제리와 경기에서 졸전 끝에 2-4로 완패한 뒤, 3차전 벨기에와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1무2패의 부진한 성적도 문제였지만 최종엔트리 선발 과정에서 ‘소속팀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장한 선수를 우선 선발한다’는 스스로의 원칙을 깨고 ‘홍명보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일부 선수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함에도 계속 기용해 ‘의리 축구' 논란도 불거졌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자진 사퇴했다.
문어영표
국내에서 브라질월드컵의 장외 키워드는 '문어영표'였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조별리그 초반 스페인의 탈락과 코트디부아르-일본 경기에서 일본의 1-2 패배 등을 정확히 예측해 화제를 모았다. 경기의 맥을 정확히 짚어내는 해설과 정확한 예측까지 더해져 이 위원은 2010 남아공월드컵 최고 장외 스타였던 '점쟁이 문어' 파울을 빗댄 '문어영표'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밖에도 '때땡큐'라는 신조어를 만든 안정환 MBC 해설위원을 비롯해 송종국, 김남일, 차두리 등 2002 월드컵 4강 스타들이 TV 해설위원으로 안방 축구팬들을 찾아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