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천행(天幸)은 백성이었다. 그런 이순신 장군을 스크린에 구현해낸 김한민 감독(44)의 천행은 이순신 그 자체였다.
성웅 이순신과 명량대첩을 영화화한 것은 김 감독에게 있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전라도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역사책을 달고 살았던 그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스크린에 옮기는 일을 숙명처럼 여겼다. 2014년 여름, 그의 숙명같은 일이 영화 '명량'으로 빛을 발했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에게서는 이순신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인터뷰 내내 '난중일기'의 내용을 인용하며 이순신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고 고뇌하고 있었는지 느껴졌다.'명량'이 15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불러들이고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건, 결코 운이 아닌 바로 김 감독의 고뇌의 결과였다는 것이 살갗으로 느껴졌다. "내가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를 이렇게 관객들 앞에 내보였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천행이 아닐까"라며 웃어보이는 그에게서 진심이 묻어났다.
-류승룡·조진웅·권율·고경표 등 많은 조연배우들의 분량이 지나치게 적다는 의견도 있다.
"이 인터뷰를 통해 그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다. 러닝타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주제인 이순신에 헌신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조연 배우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담은 확장판 출시를 생각하고 있다. 또한, 해외에 개봉되는 세계본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편집을 달리할 생각이다."
-폭발적인 흥행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혹평과 논쟁도 있다.
"영화에 대한 의견은 다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평에 대해서는 덤덤한 편이다. 서운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본질적 목표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현대와 소통시키는 것이었다. 그 본질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만족한다."
-배우들이 다른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촬영장에서 '본질'이라는 말을 강조했다고.
"영화를 촬영하다보면 수많은 선택을 해아한다. 그 선택을 해야되는 과정 속에서 이 영화의 본질을 잊은 채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봐 의도적으로 '본질'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액션 연기 등을 하다보면 캐릭터가 표현해야할 본질을 잊고 액션 그 자체에 취할 때가 있다. 그래서 매번 배우들에게도 '본질을 잊지말자'고 말했다."
-영화 말미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후손들도 알랑가'라는 대사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은 더 노골적이었다. 뒤에 이어지는 대사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대화하다가 언급되도록 수정한 거다. 사실 저 대사 만큼은 이 영화에서 일부로 드러내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극중 진구(임준영)와 이정현(정씨 여인)의 러브라인이 전체적인 흐름과 어울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하기까지에는 민초들의 희생과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걸 그리고 싶었고, 그 민초들이 불특정 다수의 인물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이길 바랬다. 진구와 이정현으로 구체적인 민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영화에서 너무 긴 전쟁신을 다루다 보니 보는 관객들도 힘들거라 생각했다. 애틋한 부부의 모습으로 부드러운 장면을 넣고 싶었다."
-극중 이순신은 백성들이 곧 천행이었다고 말한다. 김한민 감독의 천행은.
"나에게는 이 모든 게 천행이다. 김한민이라는 사람이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도 천행이고, 사고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천행이고,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사랑해주고 계신 것도 천행이다."
-'최종병기 활'에 이어 '명량'까지 사극을 연달아 하고 있다. 사극의 매력은.
"사극에는 멋과 격이 있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최종병기 활'을 촬영하고 나서 사극의 의복이나 소품, 도구 하나하나가 정말 멋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한, 한국인들에게는 짧은 머리보다 긴머리가 멋있는 것 같다. 특히 올곧게 상투를 튼 머리가 정말 멋지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