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천행(天幸)은 백성이었다. 그런 이순신 장군을 스크린에 구현해낸 김한민 감독(44)의 천행은 이순신 그 자체였다.
성웅 이순신과 명량대첩을 영화화한 것은 김 감독에게 있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전라도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역사책을 달고 살았던 그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스크린에 옮기는 일을 숙명처럼 여겼다. 2014년 여름, 그의 숙명같은 일이 영화 '명량'으로 빛을 발했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에게서는 이순신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인터뷰 내내 '난중일기'의 내용을 인용하며 이순신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고 고뇌하고 있었는지 느껴졌다.'명량'이 15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불러들이고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건, 결코 운이 아닌 바로 김 감독의 고뇌의 결과였다는 것이 살갗으로 느껴졌다. "내가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를 이렇게 관객들 앞에 내보였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천행이 아닐까"라며 웃어보이는 그에게서 진심이 묻어났다.
-앞서 '명량'에 이어 '한산'과 '노량'까지 3부작을 만들거라 밝혔다. 명량대첩으로 스타트를 끊은 이유는.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적인 엑기스, 요체가 가장 잘 담겨 있는 해전이다. '필생즉사 필사즉생(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즉, 자신의 목숨에 연연해 하지 않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순신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다. 또한, 명량대첩은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해전이다."
-'한산'과 '노량'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한산'과 '노량'은 '명량'과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전투다. 한산대첩은 처음으로 공세적인 입장에서 적선단과 마주친 전투다. 임진왜란에서 첫 승전보를 울려 전쟁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따라서 '한산'에서는 조선 수군의 자긍심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유명한 학익진과 임진왜란의 화룡점정인 거북선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한편, '노량'의 부제는 '죽음의 바다'다. 수 많은 적들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잃는 전투이기도 하다. 아마 보시는 관객들이 눈물을 펑펑 쏟을 것 같다. 임진왜란 해전 사상 가장 격렬하고, 가장 많은 배가 부서졌던 전투이니 만큼 스케일도 클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작은 '한산'이나 '노량'이 되는 건가.
"'명량'을 촬영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일단 건강을 챙긴 후 차기작 준비에 들어갈 거다. 정확히 어떤 작품이 차기작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순신 3부작을 완성하기 전에 중간 중간 하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차기작 순서에 대한 교통정리를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이순신 역을 맡을 배우로 최민식이 아닌 다른 인물을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내공이 있는 배우가 이순신을 연기해 주길 바랬다. '내공이 있다'는 것은 경륜과 관록이 있고, 더불어 연기의 깊이와 아우라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명량대첩 당시 이순신의 나이와 비슷한 배우이길 원했다. 모든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이 바로 최민식이었다."
-최민식이 다른 인터뷰에서 '한산'과 '노량'에는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민식에게 '명량'을 제안하고 바로 다음날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 이순신에 대한 관심과 바라보는 입장도 비슷했다. 촬영현장에서도 좋은 호흡을 나눴다. 그랬기 때문에 좋은 인연을 따라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최민식은 정말 훌륭한 배우고, '꼭' 다시 작업하고 싶은 배우다. 꼭 인터뷰 내용에 써달라.(웃음)"
-영화에서는 백병전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 명량대첩에서는 백병전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런 지적까지도 이순신에 대한 굉장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백병전같은 경우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와 맥락에 맞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난중일기'를 보면 안위(이승준)의 배 위에서 백병전을 치뤘다는 걸 암시하는 기록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안위의 배가 아닌 대장선 위에서 백병전을 그렸다. 이순신의 자기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기 위한 영화적 설정이었다. 작은 배를 탄 백성들이 회오리 바다에 말려드는 대장선을 끌어당기는 장면도 실제 역사 기록에는 없다. 하지만 허구적인 장면이라도 개연성있게 그려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명량'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드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내가 100억을 벌었다는 기사를 봤다. 하지만 100억이라는 숫자 속에는 허수가 많다. '아바타'와 비교해봐도 '명량'이 누적관객수는 더 많지만 매출은 훨씬 떨어진다. 보도된 것과 달리 큰 돈을 벌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은 영화 투자나 개발 등에 의미있게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