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현재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장식하고 있는 영화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공포'와 거리가 멀다. 액션(해적)과 로맨스(안녕, 헤이즐)·드라마(해무) 등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치열하게 경합 중이지만 유독 공포물은 이 경쟁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흥행은 고사하고 오히려 내놓는 작품마다 팬들의 외면 속에 불명예만 떠안고 있다.
◇팬들이 외면하는 공포영화
지난 20일 개봉한 '터널 3D'는 4일 동안 전국 관객 5만6410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연우진과 정유미가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았지만 일일 평균관객이 1만5000명이 되지 않는다. 졸전의 연속이다.
7월에도 비슷한 경우는 있었다. 김소은과 강하늘이 주연을 맡았던 '소녀괴담'이 누적 관객 48만1707명에 그치며 약 3주 만에 자취를 감췄다. 박한별을 필두로 중국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관심을 모았던 '분신사바2'(누적 관객 7만8803명)도 마찬가지였다. '가위'(2000)와 '폰'(2002)으로 한국 공포영화의 간판으로 떠올랐던 안병기 감독이 매가폰을 잡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황보라가 출연한 '내비게이션'은 전국 8개의 스크린밖에 확보하지 못하며 누적 관객 703명을 기록하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할리우드 작품도 결과는 비슷했지만 '한국산 공포물'에 대한 팬들의 외면이 더욱 두드러졌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은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으니까 관객이 안 가고 그러다보니 제작이 안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의 질적인 하락이 관객의 외면을 받는 이유라는 뜻이었다. 실제 올해 개봉한 공포영화 중 관객수와 별도로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조차 없었다.
앞서 신인 여자배우들의 등용문으로 통했던 '여고괴담'(1998) 시리즈를 비롯해 '장화홍련'(2003) '거울 속으로'(2003)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았던 공포영화들이 속속 나왔던 것과 상황이 다르다.
안타까운 죽음과 연결된 한(恨)을 바탕으로 한 '뻔한' 이야기와 분장으로만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구조적인 한계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극장가에 걸려있는 유일한 공포물 '터널 3D'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바탕은 '한'이다. 여기에 어딘가 봤음직한 상황들이 곳곳에 장치돼 신선도를 떨어지게 한다. 광부의 마스크를 착용한 한 사람이 살인과 연관돼 긴장을 일으킨다는 건 이미 '블러디 발렌타인'(2009)에서 다뤘던 내용이다. 팬들이 지루할 수 밖에 없다.
한 영화 제작·배급사 관계자는 "'여고괴담' 등 히트를 치는 작품이 이전에 비해 적으니까 공포영화가 아예 실종된 느낌까지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