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야구] 유승안은 아들 유원상이 서운하다



"(유)원상아. 이번엔 '아빠 잔소리' 말고 '선배 잔소리' 좀 할게!"

아빠는 서운하다. 아들이 "마운드 위에서는 젠틀맨이 아니라 싸움닭처럼 붙고 싸우라"는 아버지의 평소 당부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천아시안게임(AG) 대표팀에 합류한 유원상(27·LG)은 22일 열린 태국전에서 선발 김광현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성적은 1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 3회 초 마운드에 오른 그는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뒤 번트와 도루를 묶어 1사 2·3루 실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점수는 내주지 않았고 구위도 좋았다. 선발투수는 5이닝을 채워야 승리 요건이 된다는 규정에 따라 유원상은 AG 첫 경기 승리투수로 이름을 올리는 영광까지 안았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하진 않았다. 경기에 나선 한국 투수 4명 중 유일하게 피안타를 기록한 유원상은 "안타 2개를 맞고 아차 싶었다. 적응을 못 한 것인지, 방심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원상의 아버지 유승안(58)은 경찰야구단 감독이다. IS 포토
유원상의 아버지 유승안(58)은 경찰야구단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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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빠는 이럴 줄 알았다. 유원상의 아버지는 유승안(58) 경찰야구단 감독이다. 화려한 현역시절과 지도자를 두루 거친 유 감독은 아들을 국가대표 프로선수로 키웠다. 물려준 몸이나 성품은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그러나 딱 하나. 마운드에서 유순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은 아쉽다. 유 감독은 22일 오후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첫 등판을 하는 아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그는 "야구는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다. 공 하나를 던지는 것만 봐도 건성건성 하는지 이기려는 목표 의식을 확실하게 가진 선수인지 안다. 지나친 여유는 방심이자 만용이다. 경기에 나서기 전 승부 근성을 끄집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원상은 이번 대표팀에서 임창용(38·삼성)과 나지완(KIA) 오재원(두산·이상 29) 등에 이어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차출됐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경기에 나서진 못했다. 유원상은 "그만큼 절박하다"며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군 문제나 금메달은 싹 잊어라. 마운드에서 긴장을 조이고 덤벼라. 이기는 야구, 절박하게 이기는 야구, 빠른 승부가 필요하다. 젠틀맨은 양복 입고 하는 것이고, 유니폼을 입으면 매서워져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유원상이 갖고 있는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유 감독은 "원상이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로 던진다. 그러나 구속이 비슷해서 슬라이더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 때문에 슬로 커브를 두려움 없이 던져야 한다. 여기에 포크볼을 곁들이면 훨씬 더 좋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승계주자가 있을 때 등판해서 다 들여보내고 자신의 평균자책점만 지키는 건 야구 선수가 아니다. 베이스가 깨끗할 때는 당연히 다 막는 것이고 주자가 있으면 무실점으로 처리해 다른 동료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유원상이 해야 할 야구다"고 덧붙였다.

‘아빠’ 유승안과 ‘아들’ 유원상. 유원상 감독은 평소에는 일절 야구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IS 포토
‘아빠’ 유승안과 ‘아들’ 유원상. 유원상 감독은 평소에는 일절 야구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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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집에서 만나는 아빠는 잔소리를 잘 안한다고 한다. 유 감독은 "어쩌다 집에서 만나면 '밥 먹었냐. 요즘은 뭐 하고 쉬나' 같은 '아빠용' 잔소리만 한다. 야구 이야기는 일절 안한다"고 했다. 이따금 스마트폰 메신저인 '카카오톡'으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어라. 마운드에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는 말 정도는 한다. 하지만 유 감독은 이번만은 '야구 선배용' 잔소리를 좀 해야겠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국제대회 아닌가. "원상아. 그라운드에서는 반드시 상대를 이기고 내려와라. 규칙만 따른다면 인정사정 봐주지 마라. 왜 그런 건 아빠를 안 닮았을까."


서지영 기자 saltdo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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