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부터 롱릴리프, 필승조까지 어떤 보직이 주어지더라도 견고한 투구로 믿음을 준다. 올 시즌 필승조로 활약한 차우찬은 인천아시안게임 휴식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61경기에 등판해 73⅓이닝을 소화하며 팀 투수진에서 가장 많은 경기, 불펜진 중 최다 이닝을 소화했다. 그사이 개인 첫 20홀드를 챙기며 부문 4위에 올라 있다. 2011년 선발 투수로 10승을 거둔 데 이어 이번엔 불펜 투수로 자신의 커리어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모든 보직을 소화할 수 있다는 강점에도 차우찬에겐 고민이 있다. 어느덧 데뷔 9년 차이지만 자신이 어떤 이미지를 주는 투수인지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띠고 싶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팀이 원하는 보직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지만, 남은 야구 인생에서 답을 구하려 한다.
빼어난 실력은 물론 긍정적인 생각과 투수로서의 목표의식은 차우찬을 리그 최고 수준의 좌완 투수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국가를 위해 또다시 도전에 나섰다. 출발은 좋다. 차우찬은 지난 18일 열린 대표팀과 LG의 연습경기에서 1이닝 동안 3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힘찬 첫 발을 내디뎠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 차우찬을 만났다. 올 시즌 삼성의 우승과 아시안게임 금메달 그리고 개인 성적까지, 성취해야할 목표가 많은 그와 지난 시간과 앞으로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윤)="고등학교 다닐 때 구속은 어땠어?"
차우찬(이하 차)="학창시절에는 구속은 빠르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130km대 후반 정도였죠."
윤="고등학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 아니었나?"
차="또래에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워낙 많았어요. (류)현진(LA 다저스)이, (한)기주(KIA) 같이 좋은 선수들이 있어서 제 공이 빠르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죠."
윤="가능성을 인정받고 2006년 2차 지명 1라운드로 삼성에 입단했어. 처음부터 1군에서 뛰었어?"
차="아니요. 1군과 2군을 오갔죠. 주로 2군에 있었어요. 사실 데뷔 첫 해에 개막 엔트리에도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내 어깨가 안 좋아져서 재활 기간이 길어졌죠."
윤="잘하고 싶은 마음에 의욕이 앞섰던 것 아닌가?"
차="그런 이유도 있었고요. 준비가 부족했어요. 프로에서의 훈련이 어떤 일정으로 들어가는지 염두에 두지 못했죠. 입단을 하게 돼서 기쁜 나머지 12월 동안에는 몸을 만들지 못했고, 1월에 캠프에서 무리하다가 몸이 안 좋아졌죠."
윤="선배들 보면서 '나도 무언가 보여줘야겠다'는 마음도 들었겠지."
차="아무래도 힘이 좀 들어가더라고요."
윤="후배들이 들어오면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줄 수 있겠네."
차="사실 말을 해주는데 저도 그랬듯 직접 겪어봐야 느끼는 것 같아요."
윤="사실 코치들은 신인 투수들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말이야. 꼭 감독님만 보시면 세게 던지더라고."
차="맞아요. 꼭 그러더라고요."
윤="그럼 부상 이후에 투구폼에 변화를 줬어?"
차="팔 스윙에 변화를 줬어요. 원래는 지금 (양)현종(KIA)이처럼 먼저 스윙 전에 짧게 머리 위로 올리는 스타일이었는데, 어깨를 한 번 다치고 난 뒤에는 통증이 생겨서 그렇게 안되더라고요. 다른 부분에서 큰 변화가 없고요."
윤="4년 차인 2009년에 6승을 거뒀어. 다른 동기들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었나?"
차="아무래도 저희 팀이 1군 진입이 쉽지 않았으니까요. 같은 팀의 입단 동기들에 비하면 빠른 편이었죠. 그런데 다른 팀의 동기들과 비교하면 많이 늦었죠."
윤="사실 기대치가 다르긴 했지"
차="크게 의식은 하지 않았어요. 신인 때는 그 친구들이 너무 잘하니까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내 공만 잘 던지면 된다'는 마음이 커졌죠."
윤="2009년에 생애 첫 승을 거뒀어. 당시 기분이 어땠어?"
차="사실 큰 감흥은 없었어요. 다소 늦었다고 생각했죠. 3년 동안 승리가 없었는데 비로소 '1'을 채웠으니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윤="6승을 거둔 시즌을 마치고 돌아보니 어떤 마음이 들었어?"
차="풀타임으로 뛰고 나니까 이제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생각만큼 성적이 안 나왔어요. 구체적인 승수를 목표로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4년 만에 풀타임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자리를 잡고 싶었거든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죠."
윤="성적은 2010년이 가장 좋았어. 승률 1위(0.833)을 하기도 했고. 내가 봤을 때도 공이 정말 좋더라고."
차="사실 당시에도 캠프 때 허벅지 부상을 당했어요. 두 달 정도 재활하면서 5월쯤에야 1군에 올라갔죠. 당시에 2군에 있으면서 양일환 코치님이랑 훈련을 많이 했어요. 거의 매일 조련을 받았죠. 그전에는 힘으로만 던졌는데 조금씩 투구 밸런스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제가 생각했을 때도 조금은 좋아진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 1군에 올라왔을 때 두산전에서 선발 기회를 얻었는데 기록은 안 좋았어요. 그런데 내용은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다시 기회를 얻고 이후에 8연승을 할 수 있었어요."
윤="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네."
차="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젊었지만 한두 달 쉬면서 몸을 만들 수 있었죠."
윤="대부분의 투수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이전에 몰랐던 배움을 얻더라고."
차="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힘 빼는 법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죠."
윤="그러면서 그 해 승률 1위까지 했어."
차="운이 좋았죠. 팀 성적도 워낙 좋았고요."
윤="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는 MVP를 받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활약을 보였어. 5경기에서 12⅔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1.42를 기록했더라고."
차="마음가짐이 이전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했거든요. 팀은 우승했지만 저는 아쉬움도 컸죠.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허무함도 느꼈어요. 그래서 2013년 한국시리즈 전에는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 준비했어요."
윤="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준비했어?"
차="구위를 많이 신경 썼어요. 힘을 비축해서 직구 위력을 살리고자 했죠. 막상 한국시리즈에 들어가니까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몸 전체에 힘을 실어 던지는 느낌이었죠."
윤="슬라이더도 예리했어."
차="지난해는 직구-슬리이더 조합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밸런스가 일정하다 보니까 중심이 무너지지 않고 제가 던지고 싶은 코스에 잘 들어갔던 것 같아요."
윤="사실 삼성은 정규시즌 1위였기 때문에 한국시리즈까지 휴식기가 길잖아. 그 사이에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지."
차="다른 동료 선수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승하는 순간의 희열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힘이 저절로 나는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미친 거고요."
윤="해마다 큰 경기에서 나오는 '미치는' 선수가 그때는 (차)우찬이었구나."
차="그랬던 것 같아요."
윤="참 복 받은 팀이야. 그럼 가장 자신있는 구종은 슬라이더야?"
차="직구하고 슬라이더를 주무기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기복은 있는 것 같아요. 두 구종을 분배해서 던지죠."
윤="기복에 대해선 언제부터 의식했어?"
차="2011년부터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선발로 나서면서 제 투구를 돌아볼 기회가 많았죠."
윤="지금은 선발, 롱릴리프, 필승조 다하는 전천후 선수야. 힘들진 않아?"
차="솔직히 힘든 건 전혀 없어요. 저는 되도록 많이 등판해서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요. 그런 부분은 좋았죠. 아쉬운 점은 투수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윤="팬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감독이나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차)우찬이가 정말 고마운 존재일 거야."
차="제가 오히려 감사해요. 어떤 상황에서든 찾아주시니까요. 믿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사실 어떤 선수들은 개인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몸을 사리는 경우도 많거든. (차)우찬이가 좋은 본보기가 되니까 다른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거지. 삼성이 잘나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차="그래도 남은 야구 인생에 어떤 투수로 남을 수 있을지 계속 고민을 해야할 것 같아요."
윤="올 시즌에도 보직이 불펜 투수일 거라고 예상했어?"
차="사실 저도 선발 투수로 나가고 싶었는데 코칭스태프에서 불펜진을 추천하셨어요. 개인 욕심을 내세울 수는 없잖아요.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했죠."
윤="전문가들은 차우찬을 중간 투수로 쓴 건 탁월한 선택이라고 보고 있어. 만약 선발로 들어갔으면 누가 불펜에서 막았겠어."
차="개인적으로 성적에 불만족스러워서…. 제 역할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윤="올해는 처음으로 홀드 20개를 했어. 의미가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어때?"
차="사실 올 시즌 목표가 10홀드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20개까지 기록했더라고요.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벤치에서 좋은 상황에 내보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윤="너무 겸손한 멘트 아니야?"
차="실제로 최근에는 너무 오랫동안 홀드를 기록하지 못했어요. 잘 내보내주신 덕분이 맞는 것 같아요."
윤="하긴 뒤에서 안지만이 잘 받쳐주고 있기도 하지. 전체적인 투수진 조화도 좋고."
차="그런데 (안)지만이 형이랑 저는 예전보다 견고함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안)지만이 형과 저 모두 홀드 개수가 많아서 기록상으로는 나쁘지 않죠. 그런데 세부적으로 보면 제가 승계주자를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온 경우도 많고, (안)지만이 형도 승계주자 실점이 잦았고요. 그런 부분에서 불만족스럽죠."
윤="두 선수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삼성 독주가 계속되는 것 같네. 욕심들이 많아."
차="몇 년 동안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기준이 다소 위에 있긴 해요."
윤="확실히 경기에 대한 복기도 잘하고 성적보다 내용을 중요시하는 자세가 좋은 것 같아."
차="저희 투수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같아요."
윤="홀드가 쌓이면서 이전에 승패 기록과는 새로운 느낌이 들지 않아?"
차="맞아요. 새롭더라고요. 예전에는 승수에 의미를 부여했는데 지금은 홀드가 더 기분 좋더라고요. 못 막으면 정말 속상하고요."
윤="홀드 10개를 예상했는데 두 배를 해냈어. 분명 좋은 성과라고 생각해."
차="생각보다 많이 해냈다고 생각해요."
윤="사실 홀드가 이뤄지는 상황이라면 반대로 패전 가능성도 안고 마운드에 서는 거잖아. 쉽게 얻는 기록이 아니거든."
차="필승조로만 나선 첫 해여서 그런 것 같아요.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윤="70이닝 이상 던졌는데 몸 상태는 어때?"
차="전혀 문제없습니다."
윤="올 시즌 현재까지 자신의 모습에 점수를 준다면?"
차="65점 주겠습니다."
윤="사실 '차우찬은 많이 던져야 투구 밸런스가 좋아진다'는 평가가 있어. 어떻게 생각해?"
차="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저는 연투하거나 투구수가 많아야 더 좋은 것 같아요."
윤="무리가 올 수도 있잖아?"
차="몸을 많이 써서 그런지. 팔에 피로감이 좀 덜 한편이에요."
윤="좋은 때보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반면에 가끔 중요한 순간에 힘이 좀 많이 들어가는 경향도 보이더라고."
차="투수 코치님들이 가장 많이 지적해주시는 부분이기도 해요. 상황에 따라 삼진을 잡아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힘이 들어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윤="그럴 때 한 번 '쳐보라'고 자신있게 던져 봐야해. 그러면 그 공의 감각을 느낄 수 있거든. 느껴본 적 있지 않아?"
차="제가 성격이 좀 급하고, 다혈질인 면이 있어요. 마운드에 올라가면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는데요."
윤="그러면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빼는 공을 던지라는 사인을 싫어하겠다. 바로 승부하고 싶겠네."
차="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차라리 슬라이더나 바운드 공을 던지죠. 승부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아직 제구력이 완벽하지 않은 것 같아요."
윤="그래도 제구력이 많이 좋아졌어. 특별한 이유가 있어?"
차="접전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집중력이 더 생기긴 해요. 주자가 있을 때 볼넷을 주면 안 되니까 공격적으로 들어가면서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윤="올해는 아시아시리즈가 취소되긴 했지만 3년 동안 11월에도 야구를 했어. 1년 일정이 너무 빈틈이 없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차="그런데 10년이고 20년이고 1위를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윤="하긴 야구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더 좋겠다."
차="아시아시리즈가 끝나는 11월까지 몸 상태를 유지하고 긴장이 풀리기 전에 다시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더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시즌이 좀 길긴 길죠."
윤="그러게 말이야. 물론 우승으로 보상을 받기는 하겠지만."
차="한국시리즈까지는 괜찮은데 아시아시리즈까지 가면 좀 힘들 때도 있죠."
윤="밖에서 보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도 행복하지?"
차="그럼요.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죠."
윤="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선발됐어. 전천후 역할은 대표팀에서도 이어질 것 같아."
차="저야 내보내 주시면 감사하죠. 선발 투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고요. 혹시 나갈 기회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죠."
윤="사실 약한 팀이랑 붙어도 야구는 모르는 거잖아. 어린 선수들이 나가서 흔들리면 항상 뒤에서 준비를 해야지."
차="그럼요. 워낙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윤="마지막으로 아시안게임에서의 각오를 한 마디 한다면."
차="사실 제가 중간에 나서는 상황 없이 선발 투수가 길게 이닝을 소화해주는 편이 가장 좋죠.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대로 야구는 모르는 거니까요. 몸 관리, 컨디션 조절 잘해서 언제 어떤 상황에 나가더라도 기대에 부응해 금메달 획득에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