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가 아이유와 협업한 '소격동'이 2일 자정 공개와 동시에 이슈를 집어삼켰다. 추억과 미래가 공존하는 듯한 미래지향적 사운드, 동화 같은 노랫말, 그리고 아이유의 매력적인 음색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풍긴다.
사운드와 노랫말은 서태지의 음악의 작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렉트로닉 소스에 트랩(trap) 사운드를 가미했다. 비트는 느리지만, 그루브는 강한 일렉트로닉 장르다. 서태지의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부른건 팬들에겐 생경한 경험이지만, 아이유가 해석한 서태지의 음악은 '서태지 스타일'안에서 공존한다.
'소격동'의 묘한 끝맛을 북돋우는 중요한 요소는 '소격동'이란 공간의 은유다. 노랫말과 아이유의 창법만 본다면 아련한 추억을 그린 '성인풍 동화'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모든 걸 보여줄 서태지는 아니다. 노래를 듣고 있자면 이상한 길로 접어든다. 마치 예기치 않은 결말로 끝나버리는 '잔혹동화'를 펼친 느낌이다.
'소격동'이란 음악 속 소녀는 '참새소리 예쁜 마을'에 살고 있다. 노래의 앞구절에선 서정성이 극대화된다.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 거예요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소격동' 중)
그런데 노래를 듣다보면 이 공간은 '예쁘지'않다. '너의 모든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무언가 세상을 뒤집어 버릴 '사건'이 평화로운 이 공간을 위협하는 암시가 등장한다.
이 잔혹동화의 이미지는 서태지가 이미 몇 개 뿌려놓은 조각들과 '퍼즐'처럼 맞아들어간다. 서태지 컴백 공연 타이틀은 '크리스말로윈'. 크리스마스란 축복과 축제의 이미지는 '할로윈'과 겹쳐지며 불길한 상징으로 바뀐다. '두 개의 달'이 떠오를 것 같은, 전복의 날이다.
앞서 공개된 서태지의 '콰이어트 나이트' 역시 비극적인 '사건'을 감추고 있는, 혹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적막한 '밤'과 맞닿는다. 모든 상징들은 '예쁜'동화가 아닌, '잔혹'동화로 귀결된다.
앨범이 공개된 후 서태지닷컴 등 팬사이트에서는 '소격동'이 세월호 사건의 비극, 그 후 벌어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은유한 가사라는 팬들의 분석까지 올라오고 있다.
지난 2009년 8집 발표 후 5년만에 선보일 '콰이어트 나이트'는 서태지가 신비주의의 장막을 걷고 낸 첫 신보다. 그 사이 사생활을 감추고 살던 서태지란 가수는 앨범을 만들던 중 이혼, 그리고 재혼까지 많은 일들을 쏟아냈다. 다시 돌아온 서태지에 대해 대중들은 '서태지의 얘기'를 꺼내놓으라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서태지는 신작 '콰이어트 나이트'에서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