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서건창(25)이 마침내 한국프로야구에 한 시즌 200안타의 신기원을 열었다. 빛나는 오늘이 있기까지 서건창은 굴곡진 그라운드 인생을 살았다. 2008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그는 첫해 단 1경기에 대타로 나선 뒤 방출됐다. 이후 경찰야구단에 지원해 야구 인생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경쟁자들에게 밀려 탈락하고 현역으로 입대해 병역을 마쳤다.
2011년 군 제대 후 넥센의 입단 테스트를 거쳐 다시 신고선수 신분이 된 그는 2012년 개막전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수비와 재치있는 주루플레이, 좋은 공격력으로 그해 삼성 이지영, KIA 박지훈, LG 최성훈과의 경쟁에서 총 91표 중 79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신인왕을 차지했다. 서건창은 넥센 창단 이래 첫 신인왕을 수상했으며, 2루수 골든 글러브도 손에 넣으면서 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신인왕과 골든 글러브를 동시에 받은 선수가 됐다.
베이스볼긱은 시즌이 한창이던 지난 8월 초 목동구장에서 이뤄진 정수근 베이스볼긱 위원과 서건창의 인터뷰를 되돌아본다. 그의 사연 많은 야구 인생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200안타에 대한 두 달 전 생각 등이 새삼 흥미롭게 다가온다.
정수근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정)=“야구는 언제 시작했어.”
서건창(이하 서)=“어려서부터 워낙 야구를 좋아했어요. 제가 광주 출신인데, 광주 하면 해태(KIA 전신)잖아요. 그때는 정말 광주에 야구밖에 없었거든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야구라면 다들 좋아했으니까. 학교 끝나면 친구들하고 야구장에서 구경하고, 동네 공터에서 매일 야구 하고 놀았거든요.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야구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본격적으로 야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습니다.”
정=“2008년 LG에 입단한 후 1경기만 뛰고 방출됐다.”
서=“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요. 웃긴 게 그 1경기 1타석에 들어섰던 게 넥센전이었는데, 상대투수가 송신영(넥센) 선배였어요. 그때는 정말 정신도 없었고,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나요. 가만히 서서 공 3개만 보고 스탠딩 삼진을 먹었어요. 너무 긴장해서 방망이 휘두르는 법도 잠시 잊었던 것 같아요.(웃음)”
정=“기회도 제대로 못 얻고 방출당해서 아쉬움도 있었겠지만, 프로의 벽을 실감했을 것도 같다.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나.”
서=“LG에서 방출됐을 때 나이가 21살이었거든요.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방출 후에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안해봤어요. 부모님도 계속 프로에 도전할 수 있도록 믿어주셨고요. 그래도 한 번 실패했으니까 당장은 다시 시작해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군 복무를 선택했어요. 군대에 가서 운동 열심히 해서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군 복무 후에도 나이는 24살이니 충분히 야구선수로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습니다.”
정=“자신감이 있었네. 군대는 어디로 간 거야.”
서=“네. 열심히 노력해서 야구 할 수 있는 몸만 만들어 온다면 전역 후에 충분히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경찰야구단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현역으로 31사단에 입대했습니다. 물론 군대에서 야구를 하는 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야구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특별히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정=“그럼 전역하고 나서 운동은 어디서 한 거야.”
서=“모교인 광주일고에서 운동했습니다. 제가 제대할 때 NC가 생겨서 거기 트라이 아웃을 보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고등학교 때 감독님이 ‘네가 무조건 NC에 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일단 넥센에 가서 테스트를 한 번 받아봐라’라고 말씀해주셔서 넥센에서 테스트를 먼저 봤죠.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바로 신고선수로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정=“넥센 입단 첫해에 신인왕을 차지했다."
서=“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만큼이나 부모님도 상당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행복했죠. 그간 마음고생했던 것도 생각나고 그랬어요. 상을 받는데, 이게 진짜 꿈인가 생시인가 했습니다.”
정=“2013년에 부상 때문에 주춤했다가 올해 정말 무섭게 잘 친다. 따로 변화를 준 부분이 있나. 네 타격 자세가 사실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데.”
서=“타격폼을 일부러 이렇게 만들려고 해서 만든 것은 아닌데, 편하게 힘 빼고 치는 데 집중하다보니 이렇게 됐어요. 저한테는 딱 맞는 타격폼입니다. 그리고 따로 변화를 준 건 아닌데, 웨이트 트레이닝을 좀 열심히 했던 것이 빛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타격에서 가장 부족하다고 느껐던 것이 당겨치는 포인트가 하나라는 거였는데, 허문회 타격코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제는 다양한 저만의 때려내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또 코치님이 제가 조금 급해하거나 안 맞아서 전전긍긍해 하면,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주시면서 멀리 보지 못한 것들을 조언해 주세요. 늘 감사드리죠.”
정=“타격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뭐야.”
서=“타석에 들어서서 힘을 빼고 욕심을 버리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정=“따로 노려서 치니.”
저=“아니요. 저는 따로 구종을 노려서 치지는 않고, 제가 생각하는 타격 존에 공이 들어오면 무조건 칩니다. 상대 투수나 상황에 따라 존에 변화는 있습니다.”
정=“도루는 그린라이트니? 아니면 벤치 사인에 의존해? 도루왕에 대한 욕심도 있을 것 같은데.”
서=“도루는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사인도 있고, 제가 타이밍을 봐서 뛰기도 해요. 도루왕 타이틀은 시즌 막바지에 가야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지금은 거기에 욕심내지 않고 제 할 일만 하려고요. 되려 타이틀 욕심내면서 막 하려고 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이 비법 좀 알려주세요.(웃음)”
정=“일단 넥센은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확정됐으니, 시즌 막판 10경기는 버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10경기를 남겨두고는 그때부터 포스트시즌 생각하면서 체력이나 몸 관리를 해야 된다. 만약 도루 잘못했다가 부상 당해서 포스트시즌 못 나가면 억울하잖아. 미리 뛰어놓고, 그때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대신 웬만하면 다리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지금 타이밍 잘 잡고 뛰어 둬. 그나저나 역대 최소 경기 한 시즌 100안타 기록은 욕심이 있었나.”
서=“솔직히 욕심이 나지는 않았지만, 의식은 되더라고요. LG 이병규(등번호 9) 선배님과 타이 기록을 세우고 나서 훌륭한 분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겨지더라고요. 결국 김주찬(KIA) 선배님이 깨시긴 했지만, 잠시 거론됐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정="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서 빠졌어. 나도 그랬지만, 프로선수라면 대표팀에 욕심이 나잖아. 프로야구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나가는 자리니까. 떨어졌을 때 실망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을 것 같은데. ‘내가 경쟁자들보다 못하는 게 뭔가’ 싶기도 할 테고.”
서=“아니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의 실망감이 들더라고요. 기대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내가 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마음이 빨리 추슬러지긴 했습니다. 다음 번에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정=“최종 엔트리 발표한 날 경기(7월28일 SK전)에서 4타수 3안타를 치던데, 분노의 안타였던 거지.(웃음)”
서=“그날은 그냥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웃음) 이제는 다 잊어버렸고요. 시즌도 남았고, 팀의 포스트시즌이라는 중요한 일도 남았으니까 앞으로 더 잘해야죠.”
정=“뭣 때문에 떨어진 것 같니. 그런 건 생각해봤을 텐데.”
서=“(오)재원(두산)이 형과 비교해 수비에서 안정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는 단기전이라 무엇보다 수비가 중요하잖아요.”
정=“나도 네가 수비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가끔 수비에서 어이 없는 플레이들을 하니까. 그런 게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거든. 그리고 네가 볼 수 있는 포지션도 2루수로 거의 한정적이니까. 공격이나 주루에서는 월등하지만, 수비에서만큼은 앞으로 네 스스로 이미지를 바꿀 필요가 있다.”
서=“그러고 보면 정말 재원이 형은 대단한 것 같아요. 일단은 1루와 2루, 3루까지 다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걸 다 해내잖아요. 저도 1루에 한 번 나가서 수비를 해봤지만, 수비하는 방법이 다 달라서 힘든데 어떻게 하나 싶어요. 더욱이 누상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저보다 한 수 위에요. 뭔가 알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항상 받아요. 평소에 진짜 공부도 많이 하고, 고민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배울 점입니다.”
정=“그래, 너는 군대를 갔다 왔잖아. 건창이 넌 이제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2017년)를 목표로 삼고 해. 기회는 있다. 야구는 재미 있어?”
서=“네, 저도 재미있게 하려고 합니다. 해보니까 야구는 진짜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정=“지난해 가을 야구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은데.”
서=“선수들 모두 일단 중요한 것은 시즌이니까 지금은 시즌을 잘 치르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형들이 항상 ‘위를 봐야지. 아래를 보지 말자. 위를 봐야 (팀 순위가) 안 떨어진다’고 말해요. 지난해와는 달리 다들 자신감도 있어요.”
정=“욕심이 나는 기록이 있나. 한 시즌 200안타,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서=“200안타면 앞으로 적어도 1경기당 2개씩은 쳐야 하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인터뷰 당시 서건창은 135안타를 기록 중이었다. 넥센의 남은 36경기에서 65안타를 쳐야 200안타를 채울 수 있었다). 기록에 대한 욕심은 따로 없어요. 제가 열심히 하다 보면 따라오는 옵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록보다는 안 아프고 풀 타임 뛰는 것이 목표예요. 작년에 크게 다치면서 경기에 많이 결장하고 나니까, 안 아픈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프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요. 올 시즌 마칠 때까지 다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정=“신경 쓰이는 라이벌은 있나.”
서=“라이벌이기보다 부러운 선수는 있어요. 저는 NC랑 경기할 때도 그렇지만, 영상으로 나성범(NC)이 치는 것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거든요. 정말 잘 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평범한 선수들과 달리 뭔가 특별한 것을 타고난 사람 같아요. 부러운 마음이 크죠.”
정=“앞으로 어떤 선수이고 싶어.”
서=“한결같은 선수, 변하지 않는 선수,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모습이 일치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정근우(한화) 선배나 이종욱(NC) 선배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해 뛰는 존재감을 가진 선수로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