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이 3일 제주에서 열린 헤럴드 KYJ 투어챔피언십 최종 3라운드 잔여경기에서 우승을 확정하자 대선배 박도규가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KPGA 제공
"대회가 계속돼 다행입니다. 그래도 생애 첫 승인데 54홀(3라운드) 우승자는 돼야죠."
제주의 비와 안개 그리고 강풍이 사흘 동안 심술을 부렸지만 우승자는 바뀌지 않았다. 신예 이형준(22)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헤럴드·KYJ 투어챔피언십 J Golf 시리즈에서 하루 늦은 '딜레이 첫 승'을 차지했다.
3일 제주 서귀포에 있는 롯데 스카이힐 제주 골프장의 힐-오션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3라운드 잔여 경기. 이 대회는 2라운드 때 비와 안개 등 악천후로 인해 4라운드에서 3라운드 경기로 줄었고 마지막 날은 강풍으로 경기가 지연되면서 우승자를 가리지 못하고 하루 더 순연됐다.
전날 14번홀까지 8언더파 4타 차 선두를 질주해 우승을 예약한 이형준은 당찼다. '오늘 강풍(순간 최대 초속 7~8m)으로 경기가 취소됐더라면 그대로 우승인데 마음 속으로 취소되길 바라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솔직히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36홀 우승자'란 꼬리표는 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회 시작일로부터 닷새 동안 강행군을 펼친 끝에 자신의 바람대로 우승했다. 이날 오전 7시 30분에 속개된 잔여 4홀 경기(15~18번홀)에서 보기 2개를 기록했지만 최종합계 6언더파로 단독 2위 홍순상(33·SK텔레콤·3언더파)을 3타 차로 꺾고 정상에 섰다. 전날 14번홀(파3)에서 더블보기를 한 뒤 일몰로 경기가 중단된 것도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이형준은 이로써 KPGA 코리안 투어 21경기만에 고교 선배(대원고) 홍순상과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이형준은 "오늘 4홀을 남겨 놓고 4타 차여서 긴장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많이 떨렸다. 지키는 전략을 세운 것이 보기 2개로 이어졌다"며 "앞으로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도 내 경기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첫 우승 소감을 대신했다. 챔피언 조에서 처음 경기한 그는 "많은 갤러리의 함성과 응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월요일 오전에 잔여 경기를 하다보니 상상했던 우승은 아니었다"고 웃었다.
아버지 이동철(52·전남 광주에서 칼국수집 운영)씨는 "지난여름에 집 앞에 호박을 5개 심었다. 근데 모종이 호박이 아니라 커다란 박이더라. 그때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아들이 첫 승을 했다"고 기뻐했다.
사실 이형준은 무명 선수다. 국가대표 등 골프의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올 시즌 태국에서 개최된 코리안 윈터투어를 통해 어렵게 투어 카드를 손에 쥐었다. 내년도 시드를 확보했지만 이 대회 전까지 상금랭킹도 43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강풍 등 궂은 날씨가 행운이었다. 솔직히 그는 평소에도 샷의 탄도를 낮게 치는 스타일이다. 그게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오히려 그게 장점이 됐다. 15번홀까지 4언더파 공동 2위에서 역전승으로 대회 2연패를 노렸던 허인회(27·JDX멀티스포츠)는 3타를 잃는 바람에 최종합계 1언더파 단독 3위에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