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원정은 힘들다. 직접 가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시차와 오랜 비행, 낯선 기후 말고도 중동 경기장이 내뿜는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의 경우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1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 원정 팀의 기를 죽인다.
이란도 한국이 원정 때마다 고전하는 장소다.
'동갑내기' 공격수 박주영(알 샤밥)과 이근호(엘 자이시·이상 29)가 지긋지긋한 이란 징스크를 깨기 위해 의기 투합한다.
울리 슈틸리케(60·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18일 오후 9시55분(이하 한국시간)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이란과 평가전를 치른다. 한국의 올해 마지막 공식 A매치다.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을 대비한 모의고사 성격이 짙다. 이란은 한국과 악연이 깊다. 이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카를로스 케이로스(61·모잠비크) 감독은 작년 6월 울산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최강희(55) 전 대표팀 감독을 향해 '주먹 감자'를 날려 국내 팬들의 공분을 샀다. 한국은 이란과 상대전적에서 9승7무11패로 열세다. 더구나 테헤란에서는 2무3패. 그 중에서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는 3번 싸워 1번 비기고 2번을 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0일 중동 원정 출국길에 앞서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경기에서) 최근에 어떤 성적을 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번이 기존에 안 좋았던 결과를 되갚아 줄 좋은 기회"라며 이례적으로 설욕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번에 슈틸리케 감독에게 처음 부름 받은 박주영과 이근호는 5년 전에 이란 못지 않게 징글징글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징크스를 깬 경험이 있다. 당시 허정무(59) 전 대표팀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2009년 11월20일 리야드 킹 파드 스타디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닥뜨렸다. 남아공월드컵으로 가는 최종예선 길목이었다. 한국은 그 전까지 1989년 이탈리아월드컵 최종예선(2-0 승) 후 19년 째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승리가 없었다. 6경기에서 3무3패로 철저히 몰려있었다. '아시아의 맹주'라는 표현이 무색한 기록이었다. 허정무호도 고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근호의 선제골과 박주영의 쐐기골로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제압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무승 사슬을 둘이 힘을 합쳐 원정에서 통쾌하게 끊어냈다.
박주영과 이근호는 5년 전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번 이란전은 두 콤비가 중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박주영은 14일 요르단전에서 풀타임을 뛰었다. 이 1경기로 슈틸리케 감독이 박주영 기량을 모두 판단하기는 힘들다. 정예 멤버가 총출동하는 이란전에서도 박주영이 한 번 더 기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허리 부상으로 요르단전을 결장한 이근호는 더욱 이란과 대결을 벼르고 있다.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마지막 기회다. 더구나 박주영과 이근호는 현재 중동 리그에서 뛰고 있다. 대표팀에 합류하기 직전 소속 팀에서 나란히 득점포를 가동해 예열도 마쳤다. 결전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