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는 충무로에서 현재 흥행 성적이 가장 좋은 배우 중 한 명이다. '하녀'(10) 이후 2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었던 '도둑들'로 1298만3330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하며 단숨에 '1000만 배우' 반열에 올라섰고,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신세계'(12·468만2492명)와 '관상'(13·913만4586명)까지 연달아 성공하며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수치적인 성공 이외에도 평단의 호평까지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특히 '관상'에서 보여준 잔혹스러운 수양대군 연기는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데뷔 후 줄곧 따라다녔던 '미남 배우'라는 것 외에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붙었다.
그랬던 그가 27일 개봉하는 '빅매치'(최호 감독)에서 다시 한 번 흥행을 정조준한다. 천재 설계자 에이스(신하균)에게 납치당한 형(이성민)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격투기 선수 최익호 역을 맡아 시종일관 뛰고, 구르고, 뒹굴며 액션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잘 될 수 있었던 건 고생하는 스태프와 그들이 만들어낸 좋은 촬영 환경 덕이다"이라고 모든 공을 그들에게 돌렸다.
-맡은 배역에 따라 실제 생활이나 감정이 달라지는 편인가.
"난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선 캐릭터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고 말해주더라. 어떤 역할을 맡게 되면 하루 종일 그 캐릭터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를 닦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종일 그 생각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다."
-극중 최익호는 유머가 있는 캐릭터인데, 주변 반응은 어떤가.
"유쾌하다는 이야기는 모르겠고, 건강해 졌다는 이야기만 많이 들었다.(웃음) 원래 몸무게가 70kg 정도 나가는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77kg까지 늘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많이 건강해 졌네'라고 하더라.(웃음) 지금은 다음 작품인 '암살'을 위해 62kg까지 뺐다."
-최근 쉬지 않고 작품에 출연하며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남들 다 그렇게 하더라. 다른 배우들 모두 이렇게 일하는데 나만 몰랐다. (황)정민이 형이나 하정우 씨 등 쉬지 않고 일하는 배우들 보면서 '나도 분발해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각광 받을 때도 있고 아쉽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겪고 꾸준히 하다 보면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 거 아니겠나. 제2의 전성기라는 이야기도 열심히 한 길만 꾸준히 걷다 보니 듣게 된 것 같다. 연기에 대해 자꾸 욕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내가 내 영화를 봤을 때도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다."
-최근 출연작의 흥행 성적이 좋다. 작품 선택 기준이 있나.\
"아직까지도 시나리오를 볼 때 이게 잘 될 수 있는 작품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웃음) 최근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건 영화 환경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좋은 환경에서 촬영된 영화가 100편 중 10편도 안 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르다. 현장부터 기술적인 부분까지 퀄리티와 기량이 많이 발전됐다. 난 이런 좋은 환경의 수혜자일 뿐이다."
-쉬는 날에는 보통 뭘 하나.
"별거 안 한다.(웃음) 전시회 구경하는 거 좋아해서 좋아하는 작가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게 전부다. 다행인 건 연기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번 다른 영화에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밌다. 촬영 현장도 매번 바뀌고 또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즐겁다."
-눈에 띄는 후배가 있나.
"최승현 씨(빅뱅 탑)와 박유천 씨가 눈에 들어오더라. 유천 씨가 드라마에서 연기를 많이 했지만 '해무'를 보기 전까지는 '가수 활동을 하는 친구'로 인식돼 있었다. '해무'를 보고 유천 씨가 연기를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랐다. '이 친구가 이렇게 잘하나 싶었나' 싶더라. 정말 소화를 잘했다."
-'절친' 정우성과 아직까지 존댓말을 쓴다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성 씨도 마찬가지 일거다. 우성 씨와는 계속 존댓말을 하면서 더 특별한 우정이 된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운데,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우성 씨도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욕을 하거나 심한 말을 주고 받는 스타일은 아니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어섰다. "이러다 장가를 못 갈 거 같다.(웃음) 솔직한 마음으로는 일하는 게 여전히 정말 즐겁고 재밌다. 아이와 가정을 꾸려서 생활하는 게 아직 상상이 잘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