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생` 방송화면 캡처] 11월 비수기에 흥행 대박을 터뜨린 외화 ‘인터스텔라’ 속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아니, 공간이라는 말로 담을 수 없는 무한대다. 여기 인터스텔라보다 넓고, 깊으며, 아-주-우 묵직한 장소가 있다.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 같은 신입사원 부터 김대리, 천과장, 오차장 등 연차 굵은 '노땅'들까지 찾아가는 원인터내셔널 옥상이 바로 그 곳이다.
원인터내셔널 옥상은 그저 옥상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해우소'다. 묵혀왔던 감정을 녹여내는 용광로다. 때론 뜻밖의 아이디어가 동료와 대화 속에 터져 나오는 아이디어 미팅 장소다. 원인터내셔널 전 사우들의 스토리는 이 곳에서 드라마틱하게 반전하며, 제대로 농익다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비단 원인터내셔널 뿐만 그런가. 당신의 회사 옥상도 이와 같지 않은가. 오늘 하루 당신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옥상에서 피는 담배 한 대, 얼마나 간절히 생각했는가.
야! 옥상으로 올라와!
[사진=`미생` 방송화면 캡처]
어두운 밤하늘 속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장그래와 한석율의 대치상황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장그래의 주먹 선빵으로 언쟁이 끝나고 치열한 주먹다짐이 시작됐다. 주먹다짐 속에서도 신입사원의 자세를 잃지 않는 장그래와 한석율의 군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옥상으로 올라와”는 말은 한마디로 도전장이다. 이들에게 옥상은 누가 더 강한지 겨루는 하나의 링이다. 갈등의 정점을 찍는 장소다. 이는 원인터내셔날 옥상에서도 같다. ‘미생’ 초창기 장그래와 한석율은 오해로 인해 서로에 대한 불만이 정점을 찍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는 다르게 청소년이 아닌 그들은 주먹을 참고 말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장그래의 '선빵'은 오히려 서로의 진심에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 때로 수컷들은 말대신 주먹이요, 위로 대신 욕설이 더 통할때가 많다.
백문이 불여일주먹. 진심을 보기위해 때론 말이 아닌 주먹으로 갈등과 오해를 부숴야할 때도 있다. '미생'에서 옥상이 제대로 쓰이기 시작한, '제1장'이다.
진상 상사 & 동료 욕... 옥상에서 해야 제 맛!
[사진=`미생` 방송화면 캡처]
장그래-안영이-장백기를 세워놓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한석율의 모습은 마치 다단계 판매장을 떠올리게 한다. 억울함과 분노로 얼룩진 한석율의 '웃픈' 모습에 장그래-안영이-장백기는 그저 벙찔 뿐이다.
진상 상사와 동료를 욕하기 좋은 곳이 옥상 말고 또 있을까? 사무실에서는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 듯 속 시원한 외침을 하기에 옥상만큼 완벽한 곳도 없다. 지난 주 12회 방송에서는 한석율이 장그래-안영이-장백기 앞에서 사이코 사수를 욕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한석율 역할에 완벽 빙의된 변요한은 얼굴이 시뻘게 질 정도로 열변을 토해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장그래-안영이-장백기 부서의 위-아래 관계보다 한석율 팀의 위-아래가 꽤 그럴듯 하다. 사이코패스 vs 소시오패스? 한석율과 성대리의 티격태격이 오히려 정겹다.
21C 아르키메데스는 옥상에서 유레카를 외친다.
[사진=`미생` 방송화면 캡처]
오과장과 안영이. 옥상에서 우연히 만나 시시껄렁한 사담을 나누다 갑자기 “유레카!”를 외친다. 서로에게 아이디어를 얻은 두 사람의 모습은 21C 아르키메데스들을 떠올리게 한다.
고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다면 21C 아르키메데스들은 옥상에서 유레카를 외친다. ‘미생’ 오과장과 안영이가 서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두 사람은 우연히 옥상에서 마주하게 된다. 과거 러시아 문화에 빠져있던 오과장의 추억담과 안영이의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사담이 어느새 두 사람의 아이디어로 멋지게 탄생하는 순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온 몸에 전율을 흐르게 만든다. 당신도 이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당신도 한 번쯤은 오과장과 안영이 같은 경험을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답 없는 문제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옥상으로 올라가보시기를... 혹시 아는가. 답이 그 곳에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