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생겨난 건 90년대 후반이다. 'K-POP'이란 단어는 더 늦다.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후반 부터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가 있었다.
2004년 '허그'로 데뷔한 동방신기는 보아를 제외하면, 일본 시장에서 뿌리를 내린 가장 젊은 가수였다. 그리고 실패를 몰랐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오리콘 차트에서 밥 먹듯이 1위를 기록했다. 지금은 수 없이 쏟아지는 뉴스 아이템 중 하나 정도일 뿐이지만, 당시엔 사건에 가까웠다.
동방신기의 성공은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일본 러시로 이어졌다. K-POP은 그렇게 하나의 큰 흐름이 됐고,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동방신기가 그 기간 써내려간 기록은 눈이 부실 정도다. 아레나 투어, 돔 투어 등의 스케일은 동방신기가 처음이었다. 해외 아티스트 최초로 5대 돔 투어와 닛산 스타디움 공연을 진행했다.
특히 닛산 스타디움 공연은 장관을 넘어섰다. 한 회 7만 5000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다는 건, 해외 팝스타도 불가능해보였다. 그걸 해낸게 동방신기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총 200만 관객을 동원해 일본의 공연 역사를 다시 썼다.
동방신기는 12월 6~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스페셜 라이브 투어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주년을 추억했다.
유노윤호는 "10년간 활동한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아서 기쁘다. 항상 기쁘고 슬프고 좋았던 순간은 무대 위에 서였다"며 "무대 위에선 내 모든 것을 표출해왔다. 이번 콘서트에서도 내 모든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어 "동방신기 콘서트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예전에는 춤이 좋고 노래가 좋아서 무대를 했지만, 이젠 이 공연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고 소개했다.
최강창민은 "데뷔한지 4000일이 된 기념적인 날이다. 조금 더 힘도 나고 흥도 겹다"고 전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요즘 '선배님 팬이었어요, 선배님을 보면서 꿈을 키웠어요'라는 이야길 들으면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고맙다"며 "난 꿈이 없었다. 그런데 가수가 돼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게 감사하고 뿌듯하다. 그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밝혔다.
동방신기는 꾸준했다. 격변의 상황에도 지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나갔다. 유노윤호는 10주년을 맞은 비결에 대해 "항상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고, 그런 모습들을 팬들이 좋게 봐 준거 같다"고 소개했다. 이어 동방신기가 기록한 수 많은 기록에 대해 "우리들이 우리들의 기록을 깨 왔다. 앞으로도 우리들이 만든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 그게 목표다. 시간이 지나도 동방신기라는 이름이 남을 수 있게 더 팀을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최강창민은 더 큰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한 해 투어 시리즈를 하면 약 70만에서 80만 정도가 오는데, 더 노력을 해서 100만 단위를 기록하고 싶다. 한 투어를 도는데 100만명을 동원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소개했다.
10주년을 맞은 동방신기는 만족을 몰랐다. 언제나 한계를 넘어서려 했고, 도전했다. 동방신기는 그렇게 이후 10년을 차근 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동방신기의 이번 콘서트는 국내에서 약 2년여만에 선보이는 단독 콘서트다. 또한 이번 스페셜 라이브 투어의 포문을 여는 공연. 이틀간 총 2만 4000여 관객을 동원하게 된다.
동방신기는 서울 공연을 마친 후 13일 대만 타이페이 아레나, 19일 베이징 마스터카드 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