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은 오랫동안 무명의 터널 안에 있던 배우들을 햇볕으로 끌어냈다. 주연배우 뿐 아니라 원 인터내셔널을 가득 채운 수많은 차장·과장·대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찾아줬다.
배우 김대명도 마찬가지다. 2006년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로 데뷔해 수많은 연극 무대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무명 배우'의 타이틀을 벗지 못하던 그는 김대리 역으로 데뷔 8년 만에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렸다.
김대명은 특유의 우직함과 확실한 위계질서로 무장한 원 인터네셔널 영업3팀에 없어서는 안 될 살림꾼 김대리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상사 오차장(이성민)의 뒤를 묵묵하게 받치는 멋진 부하 직원이자 이리저리 치이는 무스펙 부하 장그래(임시완)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의리와 뚝심의 2년차 대리의 모습을 현실성있게 그려내 시청자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미생'이 마지막 촬영이 끝난 날, 늦은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 나온 키워드를 꼼꼼이 메모하며 조근조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는 '미생' 속 꼼꼼한 김대리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임시완을 장그래, 이성민을 오차장님이라고 부르는 그에게 '미생'과 김대리에 대한 짙은 애정이 묻어났다.
-마지막 촬영을 끝낸 소감이 어때요.
"아직도 실감이 안나요. 내일 정말 촬영이 없는건가 믿기지 않아요. 세부('미생'팀 포상휴가)까지 가야 '아 이제 끝났구나' 실감이 날 것 같아요."
-대리 역을 맡은 배우들 끼리 그렇게 친하다면서요.
"아무래도 나이도 서로 비슷하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아요. 사실 대리들 끼리 자주는 못 모여요. 맘 놓고 회식한 게 한 두번 되나?"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나요? 작품 얘기?
"그 나이대 남자들이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연애 얘기나 여자 얘기죠. 하하하."
-'미생'은 유독 다른 작품보다 배우들 끼리 친한 것 같아요, 원래 알고 지냈던 배우가 있나요?
"아뇨. 한두번 본 적있는 배우들은 있지만 거의 모든 배우들을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됐어요. 확실히 다른 촬영장하고는 분위기가 달라요. 작품 자체가 배우들을 더 가깝게 만든 것 같아요. 캐릭터도 자기 실제 나이와 비슷하고 실제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실제 본인 성격도 김대리와 많이 닮았나요.
"맞아요. '미생' 속 캐릭터 중 김대리가 저와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 같은 게 굉장히 비슷하죠. 하지만 김대리가 저보다 나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웃음)"
-오디션을 보고 출연하게 된 건 가요?
"김대리 역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옥상에서 장그래에게 '보기 드문 청년이네'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거였죠. 오디션 보고 느낌은 나쁘지 않았는데 결과라는 건 예측할 수 없으니까 마음을 반쯤 비워놓고 있었어요. 다행이 결과가 좋게 나왔죠."
-김대리가 가장 보통의 직장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직장 경험이 없어서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참고했죠. 사실 '미생'은 회사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인간의 삶을 회사라는 공간에 축소시킨 것과 같죠. 뭔가 인위적인 것 보다는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네 명의 신입사원(장그래·장백기·안영이·한석율) 중 가장 후배 삼고 싶은 캐릭터는 누군가요.
"네 명 모두 가지고 있는 장점이 달라서 고르기가 너무 어려워요. 사실 제가 뭔가 '좋다, 싫다'의 기준이 없어요. 결정장애도 있어요. 그래서 뭔가 여러가지 중 딱 하나만 골라라 이런거 잘 못해요.(웃음)"
-가장 옆에서 함께 연기한 임시완 씨는 어땠어요.
"장그래는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가수 출신이라는 선입견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그런걸 따질 수 있는 수준의 사람도 아니구요. 또 감독님이 그에게 배역을 줬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 아니겠어요? "
-임시완 씨 만큼이나 이성민 씨와도 많이 호흡을 맞췄죠.
"아무래도 선배님이니까 처음 만났을 때는 어려웠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좋았았어요. 차장님을 보고 있으면 배우고 싶은 점이 정말 많아요. 연기를 대하는 자세부터 평소 모습까지도요. 뭐 하나만 좋았다고 꼽을 수 없을 정도에요."
-얼마전 일간스포츠와 취중 인터뷰를 가진 강대리 오민석 씨와 하대리 전석호 씨가 김대명 씨의 애드리브가 굉장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걔들이 제 욕하고 다니는 건 아니죠?(웃음) 원래 대본에 없는 대사를 많이 하긴 했지만 현장에서 바로바로 나오는 애드리브는 아니였어요. 미리 대본을 읽어보고 준비한 거죠. 사실 우리 드라마가 정말 '일하는 드라마'다 보니 지루할 수도 있거든요.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일만 하다가 끝나요. 점심도 안먹고 야유회도 안가죠. 그 안에서 보는 사람들이 '풉'하고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대사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16일 임시완 트위터와 김대명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16일 임시완 트위터와 김대명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생일이었던 16일에 임시완 씨와 김대명 씨의 SNS에 올라온 사진이 화제가 됐어요. 정말 혼자서 생일 파티를 하고 있던 건가요.
"에이. 당연히 연출이었죠. 혼자서 그러고 있으면 진짜 이상한 사람이죠.(웃음) 그 케이크도 장그래가 준비해준 거였어요. 케이크 위에 '더할 나위 없는 김대리님'이라고 써줬어요. 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속 두 사람(임시완·이성민)은 본인들이 찍겠다고 해서 찍은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