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시민 15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지난주 17명이 희생된 테러 사건을 규탄하는 대규모 행진이 열렸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파리 도심에서 프랑스 시민과 함께 거리 행진을 벌이며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희생자를 애도하고 비이성적인 테러를 규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등 세계 34개국의 정상급 인사는 현지시간 어제 오후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나시옹 광장까지 3km에 이르는 행진을 선두에서 이끌며 표현의 자유 수호 및 테러 추방에 대한 연대 의지를 천명했다.
테러로 숨진 희생자 가족들도 행진에 참석했다. 거리 행진 출발장소인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오전부터 시민 수십만 명이 집결해 '자유·평등·우애'와 '샤를리' 등 구호와 프랑스 국가를 부르며 집회 열기를 고조시켰으며, 오후 들어 인파는 더욱 불어나 광장은 각국 국기와 구호판을 든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각국 지도자들은 엘리제궁에 모여 있다가 대형 버스를 타고 집회장소로 이동해 군중의 박수를 받으며 광장에 입장했다. 이들은 행진이 시작되자 연대의 의지를 과시하는 뜻에서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연출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집회에 앞서 각국 지도자들을 영접하는 자리에서 "오늘은 파리가 세계의 수도가 되는 날"이라고 말했으며,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장관들과 반테러 국제회담을 열고 테러 척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단호한 행동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카즈뇌브 장관은 "이번 사태로 프랑스 전체가 애도하고 있으며, 테러리스트가 노리는 것은 유럽의 가치인 민주주의"라고 덧붙였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테러는 우리의 정신과 가치를 파괴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오늘 행사는 유럽이 지난 70년간 그래 왔듯이 미래에도 자유를 보장할 것이라는 중대한 메시지를 알리는 자리"라며 "지금은 단결의 순간이자 희망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어제 집회에는 도널드 투스크 신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옌스 슈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등 주요 인사도 참석했으며, 터키의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와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등 이슬람권 지도자를 비롯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미국에서는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대표로 참가했다.
그러나 반 이슬람 성향을 강력히 표방하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대표는 초청장을 받지 못했고, 르펜 대표 역시 불참 의사를 밝혔다. 르펜 대표는 대신 국민전선이 작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남부 보케르시에서 열린 '샤를리 에브도' 희생자 추모 행진에 참가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를 규탄하고 공격받은 언론사인 '샤를리 에브도'에 연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건 후 처음 맞는 일요일에 행사를 마련했다. 또한 파리 집회를 위해 경찰관 2천 명과 군인 1천350명을 시내 곳곳에 배치해 불상사에 대비했다.
한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얼굴을 보이지 않아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세계 34개국 정상이 집결해 파리 주간지 테러를 나무라는 자리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는 역사적 현장에 미국의 대통령이 빠진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파리 행진에는 회의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 중인 에릭 홀더 법무장관과 주프랑스 미국 대사인 제인 하틀리를 정부 대표로 참석하게 했다. 하지만 CNN 방송은 이날 파리 행진에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불참했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올리며 비판적 논조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CNN 앵커인 제이크 태퍼는 파리 행진을 생중계하는 현장에서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 정상들이 참여하는 아름다운 행진에 보다 높은 인사가 미국 정부를 대표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고 뼈있는 일침을 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일정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며, 백악관은 다음 달 18일 폭력적 극단주의 대응을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AFP는 파리 집회 말고도 리옹과 보르도, 마르세유 등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도 6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테러 규탄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시민 1만명이 테러 규탄 집회를 여는 등 런던, 마드리드, 뉴욕, 카이로, 시드니, 스톡홀름, 도쿄 등지에서도 행사가 열렸으며, 런던시는 파리 테러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 밤 타워브리지와 트라팔가 광장에 프랑스기를 상징하는 3색 조명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