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그가 창조한 캐릭터 독고탁은 여러 야구 만화의 주인공으로 독자를 울리고 웃겼다.
1970~1980년대는 한국 야구 만화의 전성기다. 고교 야구에서 시작한 야구 붐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맞물려 만화가들의 창작열을 자극했다. 이상무 화백을 비롯해 허영만, 이현세, 이우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시기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당시 야구 만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마구(魔球)’였다.
이상무 화백의 대표작 ‘달려라 꼴찌’에서 주인공 독고탁은 S자로 휘는 ‘드라이브볼’, 먼지를 일으키는 ‘더스트볼’, 공중에서 튀어오르는 ‘바운드볼’ 등을 던진다.
‘마구’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왔다. 일본이 야구라는 경기를 받아들인 해는 연구자에 따라 1872년, 또는 1873년으로 꼽힌다. 당시 일본에는 ‘변화구’라는 개념이 없었다. 미국 야구에서도 커브는 1870년대 초반 고안됐다는 게 통설이다. 일본에서 커브가 선을 보인 건 1880년대다. 커브를 처음 본 타자들은 “규칙 위반”이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 커브를 당대 일본인들은 ‘마구’라고 불렀다. ‘베이스볼(Baseball)’을 ‘야구(野球)’로 번역한 교육자 주만 가나에가 1897년 출판한 야구 교본에는 ‘마구’를 커브로 정의하고 있다.
커브, 드롭(빠른 커브) 등 전문 용어가 등장함에 따라 야구장 안에서 ‘마구’라는 단어는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만화가들은 이 단어를 부활시켰다. 일본에서 ‘열혈 스포츠 만화’의 전형을 세운 작품은 1960년 연재가 시작된 ‘거인의 별’이다. 이 만화에서는 ‘메이저리그 1호’, ‘메이저리그 2호’, ‘메이저리그 3호’라는 마구가 등장한다.
일본 야구 만화는 투수와 타자의 1대1 대결 구도를 기본으로 했다. ‘마구’는 야구 만화에 앞서 인기를 모은 닌자 만화의 ‘필살기’에 대응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미국 영화에 있었다.
1949년작 미국 영화 ‘잇 해펀스 에브리 스프링(It Happens Every Spring)’에는 배트를 통과하는 마술 같은 공이 등장한다. ‘거인의 별’ 원작자인 가와지리 잇키는 자신의 마구에 대해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한국 야구 만화는 여러 면에서 일본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단신의 왼손 투수 독고탁의 ‘더스트볼’도 ‘사라지는 공’이라는 점에서 ‘메이저리그 2호’와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닌자만화식 정서와는 차이가 있다.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이상무 화백의 작품은 서사 구조가 안정됐다. 시대상을 녹여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며 “그의 작품에서 마구는 핸디캡이 있는 주인공이 더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선택한다. 중산층이 형성되기 전인 1970년대~80년대 초반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