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MBC '무한도전'에서는 '나쁜 기억 지우개'편이 방송됐다. 이날 ‘미생’의 원작 만화가 윤태호는, 노크를 하면 웃으며 문을 열어줄듯한 삼촌과 같은 인자함과 살아온 인생을 토대로 한 성찰로, 화면 건너편의 시청자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안겼다.
우리 심중에 있는 고통의 '증상’을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 시대'와 '그 세대'가 겪고 있을 고통을 그가 이미 먼저 겪어 잘 알고 있을것이라는 느낌. 그렇기에 TV 시청만으로 충분한 '상담'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그의 언어는 알기 힘든 전문용어나 장황한 수식어 없이, 이해하기 쉬우며 '예시'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채워졌다는 점이 주효했다. 도덕책 속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뻔한 '명언'과는 달랐다.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은 5명의 멤버들이 전문가들에게 각각 상담을 받고, 이후 상담의 노하우까지 전수받아 직접 시민들의 ‘나쁜 기억’을 지워주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기획이다. 전문가로는 혜민스님, MBC 기자 출신의 조정민 목사,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 한국 자살예방협회 김현정 대외협력장, 만화가 윤태호가 참여했다.
이날 광희의 상담을 맡은 윤태호 작가가 광희에게, 그리고 이 땅의 ‘부모’에게, 또한 우리 모두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했다.
▶ 광희에게…'일에 즐거움 심기'
이날 광희는 윤태호에게 ‘무한도전’의 6번째 멤버로 들어오며 얻게된 심적 부담감을 털어놓았다. 광희는 ‘’무한도전‘ 녹화 이후의 시간’을 묻는 윤태호의 질문에 “공허함에 빠진다”며 “막상 (녹화가) 끝이 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태호는 처음에 광희의 이 말을 다소 오해했다. 그는 “나도 그렇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어 “마감을 할때는 일이 끝난 행복감에 잠을 못잔다”고 말했다. 이에 광희는 “오오”라고 ‘리액션’을 하면서도 “행복감에?, 그렇죠”라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의 ‘공허함’은 행복감에 이은 감정이 아니라 그 ‘반대쪽‘에 있었던 것.
정확한 전달에 어려움을 느낀 광희는 잠시 낙담했고, 자칫 두 사람간에 소통의 단절이 있을 수도 있었던 상황. 바로잡은 것은 윤태호였다. 그는 즉시 “광희씨는 마냥 행복한건 아니죠”라고 물었고, 광희는 “그럼요, 그럼요”라며 반가운듯 웃었다.
이에 윤태호는 인위적으로라도 녹화의 ‘끝’에 사소한 즐거움이라도 심어놓으라고 조언했다. “녹화가 끝난 후, (예를들어) 꼭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버릇을 들여 ‘‘무한도전’ 녹화 끝 = 맛난 음식‘이라는 행복감을 스스로에게 장치해야 한다는 것.
그랬을때 광희가 스스로 ‘무한도전’의 녹화를 마칠때마다 ‘괴롭고, 힘들고, 형들에 대한 미안함의 연속인, 내 역할을 다 했는지 걱정되는’ 기분에서 헤메지 않고, 소소한 기대를 품게되는 수 있는 즐거움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후 윤태호는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말로 광희의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광희는 ‘무한도전’에 자신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광희는 도움을 (오히려)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멤버들이 이를 도와줄 것이다”라고 말해 시청자들이 광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대신 건넸다.
▶ 우리 모두에게…'일상의 소중함'
각각의 상담이 끝나고 전문가들과 멤버들이 모두 모인 자리. 유재석은 많은 사랑을 받은 ‘미생’에서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윤태호는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작품에 옮긴적이 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파트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곤 했던 과거의 일을 들려주었다. 그는 “하루는, 일이 많아 다른날보다 늦게 아이를 찾으러 갔는데, 어두컴컴해진 어린이집에서 ‘종일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라”며 ‘미생’ 중 ‘선차장’이라는 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윤태호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데, 우리가 피해를 (희생을) 보고 있다’고 썼다”며 “결국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크루즈 여행을 못가는 것‘같은 것이 아니라, 일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극 세종기지에서는 워낙 주변이 척박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룰을 철저히 해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징계까지 내린다”며 “우리는 그 정도 극한으로 가야만 일상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면 여행을 간다거나,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채워지는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래서 더 작은 단위인 나, 내 가족, 내 구성체 부터가 일상적인 언어로 채워져야 비로소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 땅의 부모들에게…'꿈은 '직업'이 아닌'
윤태호는 아이들의 꿈이 ‘직업’이 아니어야 함을 조언했다.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만화의 길을 택했지만, 성공에 대한 갈망과 이상한 복수심 때문에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이를테면 단순히 ‘만화가’가 아닌 ‘멋지고 밝은 만화가’ 처럼 직업 앞에 그 직업을 수행하는 '태도‘가 꿈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말. 윤태호는 “아이들에게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때, 직업으로 대답을 듣지 말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라고 질문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멤버들이 거리로 나가기 전에 윤태호는 “우리가 안갯속에 있으면 코앞도 무섭지 않나. 걱정을 모호하게 하다보면 모든 것이 걱정거리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 걱정의 근본 원인과 실체를 확실하게 알고나면, 내가 가야할 길의 다리가 부러져 있어도, 그 옆에 내가 건너갈 수 있는 작은 길이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걱정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길이 보이니, 부정적인 감정을 방치하지 말아야 함을 (멤버들이) 시민들에게 알려주었으면 한다“고 맺음 했다. 박현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