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이기지 못할 것으로 봤다. 관련 학계의 많은 분들의 견해도 그랬다. 인공지능은 언젠가는 인간을 바둑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대국은 ‘언젠가’가 바로 지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남은 대국 결과도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컴퓨터가 체스 챔피언을 이긴 지는 이미 오래 됐다. 체스는 단순한 게임인 반면 바둑은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다뤄야 한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과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 왔다. 물론 현재 아무리 빠른 컴퓨터도 단일 계산 속도는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알파고는 탐색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상태에서 어떤 행위를 하면 상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계속적으로 따진 뒤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선택을 한다. 바둑에선 ‘수를 내다본다’고 한다. 만약, 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00가지라면 두 수 앞을 내다보는 건 1만 가지 경우를 살핀다는 의미이고 세 수 앞이라면 백만 가지 경우를 샆펴야 한다. 사람은 두뇌에서 이러한 과정을 수행하고 컴퓨터는 메모리 상태를 변화시키면서 계산을 해낸다. 바둑에서 이러한 경우의 수는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드웨어의 성능의 향상만으로는 컴퓨터가 프로 바둑 기사를 이기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알파고는 딥러닝 기술을 사용하여 학습을 수행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불필요한 경우의 수를 줄여나가고 전체 알고리즘을 보다 최적화하고 강화해 나갈 수 있다. 알파고는 이세돌9단과의 대국에 앞서 유명 바둑 기보를 ‘학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부문에서의 상호 보완적 발전과 혁신이 알파고의 첫 대국 승리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결과는 예상보다 빨랐지만 언젠가는 이뤄질 일이었고 인공지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이다.
일반인들은 공포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자주 다뤄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를 가지는 바둑도 결국은 게임이다. 게임은 명확한 제약조건 하에서 진행되므로 현실 세계와 비교하면 제약이 극도로 많은 단순한 세계인 반면, 현실 세계는 불확실성과 비결정성 등을 가지는 복잡도가 훨씬 높은 세계이다. 이러한 현실 세계에서 인간은 특정한 영역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일반지능(genral intelligence)을 사용하여 서로 상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심지어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도 나름 좋은 해결책과 전략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인공지능은 그런 수준에는 이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둑은 체스보다는 상당히 복잡한 게임이지만 실제 세계의 복잡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따라서 인간은 실수나 감정기복, 단순 계산의 오류 가능성 등 인공지능과 비교할 때 약간의 단점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훨씬 훌륭하고 유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알파고와 같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도 인공지능이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는 인간을 앞설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일부 직업들은 가까운 미래에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그랬듯이 포크레인 한 대가 삽을 든 사람 100명을 대신한 지 오래되었지만 세상이 더 불행해지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삽질을 하던 사람 중 일부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게 됐고, 일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종사하게 됐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