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구본능(67) 총재와 양해영(54) 사무총장은 지난 9일 중국 베이징행 비행기를 탔다. 구 총재는 2008년 올림픽 당시 대표팀 격려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야구 관계자와 업무상 협의를 위해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선 야구, 일본에선 야큐, 중국과 대만에선 봉구다.
이름도 다르지만, 프로야구는 축구에 비해 고립된 환경에서 자국 리그 중심으로 운영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세계화는 ‘위기’로 우선 다가왔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동열의 일본 진출 등은 선수 자원 유출과 프로야구 인기 저하라는 우려를 먼저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진 그럭저럭 잘 대응해왔다. 중국은 야심찬 야구 발전계획을 세우고 있다. KBO와의 파트너십에 적극적이다. 중국발 변수는 야구 세계화에 늘 수동적이었던 한국 야구가 일정한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기회다. 양해영 총장을 14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만났다.
- 중국엔 어떻게 가게 됐나.
“KBO는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아 ‘비전2020’을 수립했다. 10개 구단 체제로 1000만 관중을 유치하고 구단 손익을 개선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1000만 명 시대 이후엔 어쩔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래서 예전부터 중국 시장을 내부적으로 검토해왔다. 처음엔 중국인 관광객을 야구장으로 유치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측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하자는 요청이 왔다. 좋은 기회다.” - 중국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정부 차원에서 2025년까지 10년 간 투자해 스포츠산업을 5조 위안(약 915조원) 규모로 키운다는 정책이 이미 정해졌다. 스포츠를 녹색 산업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야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5%(약 46조원)다. 지도자 6000명, 심판 등 야구관련 전문인력 1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결정한 일은 어떻든 완수한다.”
- 누굴 만났나. “중국 체육행정은 국무원 산하 국가체육총국이 주도한다. 한국식으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합쳐진 조직이다. 여러 종목을 묶어 복수의 주석이 관리한다. 중국에서 ‘봉구’라고 하는 야구는 핸드볼, 하키, 소프트볼과 함께 묶여 있다. ‘수곡봉루구’라고 하더라. 담당 주석인 레이쥔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중국야구협회(CBAA), 중국프로야구(CBL) 관계자를 만났다. 중국프로야구는 헝달연합이라는 회사에서 올해부터 운영과 마케팅을 맡는다.”
- CBAA와 CBL의 관계는 어떤가. “한 가족 같더라.”
- 중국프로야구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전략적으로 성장했다. 이후엔 침체됐다고 알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에 7개 구단이 있다. 하부리그도 있어 승강제가 실시된다. 지금 야구장 규모는 3000~4000석이다. 아직 인기는 떨어진다. 1만2000석 규모 구장 여러 곳은 3년 내 건설한다고 한다. 구단 수는 2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가능하다고 본다. 2013년 아마추어 야구팀 수가 800개였다. 지난해엔 3000개다.”
- 미국과 일본은 이미 훨씬 전부터 중국 야구 시장에 진출했다. 후발 주자인 KBO가 비교우위가 있을까.
“메이저리그는 야구시장 확대와 미래의 선수 수급 기지로 중국을 본다. 이미 경기중계권은 팔고 있다. 일본은 용품업체 주도로 지원을 했다. 한국은 ‘지리’와 ‘인화’의 이점이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선수, 지도자 등 인적 교류를 강화할 수 있다. 일본에 비해 정서적 거부감이 적다. 구본능 총재가 중국 관계자에게 말했다. ‘야구는 공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매겨진다. 사람이 우선이다’. 인적 교류를 강조한 발언이었다.”
- 한국 출신 지도자는 과거에도 있었다. “강정길 전 한화 코치가 지난 3일 광저우 레오파드 감독으로 취임했다. 야구 외에도 여러 종목 지도자들이 중국에서 활약했다. 성과있는 교류를 위해서는 한국 지도자들이 달라져야 할 점도 있다. ‘한국인 지도자는 능력은 있는데, 선수를 너무 때린다’고 했다. 얼굴이 화끈했다. 지도자 뿐 아니라 향후 중국 프로야구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약할 이도 있을 것이다.”
- 중국에서 한국 야구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프로야구 리그를 35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CBL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현재 중국 고교 야구팀이 50개다. 한국과 비슷하다. 그 숫자로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공을 높게 평가했다. ‘우리도 가능하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 중국야구가 ‘굴기’한다면 동아시아 야구는 어떻게 바뀔까. “중국은 꿈이 크다. 대만까지 묶는 ‘대중화리그’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이 성장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참가하는 ‘원 리그’도 언젠가 실현될 것이다. 이 경우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국내 기업은 더 큰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국의 야구 관련 사업에도 기회가 될 것이다. 중국 측에서 경기장 건설에 자문을 요청했다. 국산 야구용품이 진출할 수도 있다.”
- 구체적으로 올해 추진할 일이 있다면. “유소년 야구부터 시작할 것이다. 12세 이하 중국팀을 국내 대회에 초청할 생각이다. 처음으로 KBO리그 중계권을 해외에 판매할 것이다. 대행은 헝달연합이 맡기로 했다.”
- 한류를 이용한 연예인 야구팀 등도 구상할 수 있겠다. “워낙 인기가 있으니. 빠르고 쉬운 길이지만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 KBO리그 경기를 중국에서 치를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KBO리그 개막전을 치르는 방안은 한 차례 추진했다. 비용과 시간 면에서 구단들이 부정적이었다. 중국에서 더 빨리 개막전이 열릴 수도 있다. 한류가 살아있는 나라다. 더 가깝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