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한국시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시범경기가 열린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딘스타디움. 미네소타의 공격이 시작된 6회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이 마운드에 올랐다. 미네소타의 선두 타자는 3번 트레버 플루프. 5번 타순에 위치한 박병호(31)가 교체되지 않는 한 둘의 맞대결이 예상됐다. 오승환은 플루프와 4번 타자 케니스 바르가스를 잇따라 내야 뜬공으로 처리하고, 박병호를 맞을 준비를 했다.
박병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에서 표정 변화 없기로 유명한 '돌부처' 오승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타국에서 만난 후배에 대한 인사였다. 박병호는 오승환을 응시하며 눈인사로 화답했다. 둘의 맞대결은 2013년 9월21일 이후 3년 만이다. 오승환은 2013시즌을 마친 뒤 일본 프로야구(NPB)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2년 동안 NPB에서 활약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해외원정도박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세인트루이스와 계약에 성공했다. KBO리그 홈런왕 박병호는 지난 겨울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미네소타 유니폼을 입었다. 미네소타의 입찰액은 1285만 달러로 역대 아시아 출신 타자 2위였다.
승부가 시작되자 둘은 진지했다. 오승환은 트레이드마크인 '돌직구'로 초구 루킹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2, 3구가 볼 판정을 받아 볼카운트는 2-1이 됐다. 오승환은 4구째 빠른 공으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이른바 '투투 피치' 상황. 오승환의 선택은 '돌직구'가 아닌 변화구였다.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져나가는 134㎞짜리 스플리터를 던졌다. 직구를 예상한 박병호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오승환의 시범경기 첫 삼진. 공교롭게도 KBO리그 후배 박병호를 상대로 잡아낸 삼진이었다.
두 선수는 KBO리그 시절에도 맞대결을 펼쳤다. 박병호의 LG 시절 포함 통산 15차례 맞대결에서 안타 2개만 내줬다. 박병호는 2안타 중 1개를 홈런으로 때려내며 자존심을 세웠다. 오승환의 박병호 상대 피안타율은 0.142. 삼진은 6개를 잡아냈다. 박병호의 타구가 외야로 날아간 건 홈런과 안타, 외야 뜬공 등 세 차례 뿐이다.
정면 승부를 즐겼다. 오승환은 박병호가 넥센 이적 뒤 잠재력을 폭발시킨 2012~2013시즌에도 오승환은 직구 승부를 주로 했다. 둘의 마지막 맞대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오승환은 9개의 공을 모두 직구로 던져 박병호를 투수 앞 땅볼로 유도했다. 그러나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는 오승환은 변화를 택했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박병호에게 결정구로 스플리터를 던져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국내에서의 대결은 모두 9회 이후였다. 오승환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였다. 하지만 15일 승부는 6회에 펼쳐졌다. 두 선수가 지금 한국을 떠나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국내 팬에게는 아쉽지만 오승환과 박병호의 이날 맞대결은 올시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미네소타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세인트루이스는 올 정규 시즌에서 만나지 않는다. 인터리그 경기가 배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승환과 박병호가 시즌 중 만나려면 누군가가 트레이드돼 같은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두 선수 모두 강등돼 마이너리그에서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