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이형종, "투수 출신 선입견 사양합니다"
“만루라면 투수가 긴장합니다."
타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치를 늦게 배웠다. 그가 지금 '타자'기 때문이다. LG 이형종(27)의 말이다.
야구 팬에게 이형종은 '서울고 투수'라는 이미지다. 200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뿌린 눈물은 많은 이들의 심장을 자극했다. 하지만 2008년 LG 입단 이후 직업 야구선수로서는 굴곡을 겪었다.
두 차례 팔꿈치 수술을 했고, 은퇴 선언도 했다. 골프를 했다가 다시 야구로 돌아왔다. 투수가 아닌 타자로서다. 2015년 퓨처스리그에서 39경기 타율 0.305 13타점 5도루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비췄다.
올해 시범경기에서는 10경기 타율 0.143(21타수 3안타) 1홈런 1타점 1도루의 성적을 남겼다. 성적은 보잘 것 없지만 호쾌한 '레이저 빔 송구'로 야구계에 이형종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29일 잠실구장에서 이형종을 만났다. 송구에 대해 물었다. 다소 복잡미묘한 답이 돌아왔다.
“팔 상태가 아직은 오락가락해요. 계속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었다면 제가 투수를 포기하지 않았겠지요. 기복이 큰 편이라 보다 좋은 활약을 보여드리기 위해 근육 강화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투수는 경기를 지배한다. 그래서 '투수는 이기적'이라는 말도 있다.
투수에서 야수로의 전환은 쉽지 않다. 27세는 비주전 선수에게 많은 나이다. 하지만 이형종은 아직 젊다. 적응이 빠르다. 야수로 전향한 선수가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고 시범경기까지 뛴 자체가 뛰었다. 야구 센스는 뛰어나다. '투수 이형종'은 실패했지만, '야수 이형종'에 대한 팀의 기대는 아직 남아 있다.
“투수로 뛴 경험이 타석에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역지사지’로 투수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으니. 예를 들어 만루에서는 타자도 긴장하게 마련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더 떨리는 사람은 투수거든요."
"투수는 잘 던지다가도 몸에맞는공 하나로 무너질 수 있어요. 저는 지금도 타석에 서면 긴장합니다. 하지만 투수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타자 이형종'에 대한 KBO리그 공식 1군 기록은 아직 없다. 2008년 루키 투수 이형종은 여전히 루키다. 그에게 새 시즌의 목표는 무엇일까.
"최대한 1군에서 경험을 많이 쌓고 싶어요. 타석도 최대한 많이 서고 1군 동료들과 오랜 시간 동행하고 싶고. 그리고 ‘투수로 뛰다 전향한 선수치고 잘한다’는 선입견이 깃든 평이 아니라 ‘타자 이형종은 잘하는 선수’라고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요.”
잠실=박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