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혹은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것이 이 질문 하나로 바뀌었다. 벌레와 쓰레기도 되어보고, 심지어는 떡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했다. 그렇게 tvN '배우학교'는 배우 박신양의 진두지휘 아래, 사물에 생명을 불어 넣으며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이뤄나갔다. '발연기' 학생들은 진귀한(?)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혼란스런 마음을 추스리며 무대 위에서 조금씩 연기를 알아갔다.
박신양이 처음으로 출연을 결정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대중은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박신양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는 첫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연기 밖에 몰랐다. 최근 이경규는 '앞으로의 예능 트렌드는 '쿡방'도 '먹방'도 아닌 '다큐'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신양은 '배우학교'를 연기를 주제로 한 '다큐'로 탈바꿈 시키며 예능의 새로운 장르를 몸소 실천했다.
'배우학교' 제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배우, 개그맨, 가수, 작가 등 연기가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직업, 나이는 상관 없었다. 이 중 개그맨 이진호(30), 배우 박두식(28), 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28)를 취중토크에 초대했다. '배우학교'를 통해 숱한 사물로 분했던 세 사람에게 사진 기자가 '술'을 표현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다소 과한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난 이진호는 "다신 안할줄 알았는데"라며 당황했고, 유병재와 박두식은 "분명 겹칠테니 빨리 포즈를 선점해야 한다"며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진호는 "취중토크라고 하기에 느낌을 살리려고 어제 술을 밤새 먹었다"며 환히 웃었다. 이들의 포즈는 '술'보다는 '숙취'에 가까웠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
(박두식) "소주 두 병씩 먹는데, 운동할 때는 다섯 병씩 먹어요.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이진호) "주량을 따져서 먹지는 않고 한 번 먹으면 아침까지 먹어요. 이미 취해서 집에 가야하는데도 계속 더 먹어요. 다음날이 없어요 저는. 요즘에는 필름도 좀 끊기더라고요. 나이는 못속이나봐요. 하하"
(유병재) "저는 자몽맛 소주 두 병 아니면 맥주 2000cc정도? 딱 좋은 상태가 돼요. 필름 끊길 때까지는 원래 안 먹어요. 술을 자주 먹거든요."
-'배우학교'의 모든 촬영을 마쳤죠.
(박두식) "정말 좋았던 기회에요. 만감이 교차됐죠. 촬영을 앞두고는 화도 많이 났어요. 박신양 선생님이 배우는 일은 화가 많이 나는 거래요."
(이진호) "아쉽지만 후련한 것도 많아요. 한 번 합숙하면 3일 촬영하는데, 가기 한 일주일 전부터 스트레스 받아요. 정말 힘들어요. 잠도 많이 못자고요. 힘들게 괴롭혀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육체적인 것도 힘들거든요. 평상시에 좋은 일이 있다가도 '배우학교' 들어갈 생각하면 갑자기 웃음이 안났다니까요."
(유병재) "더 배워야 하는데 너무 일찍 졸업한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이 커요. 제일 많이 배운 것은 '부족함'이에요.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알게 됐죠."
-프로그램에서 사물, 벌레 등 다양한 것이 되어 보았죠.
(이진호) "진짜 어려운거죠.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요. '이건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도 있는데, 정말 감이 안잡히는 것도 있었어요. 말도 안되는거를 표현하라고 할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박두식)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도중에 후회한 적도 있어요. '이거 왜 했지', '빨리 내려가고 싶다' 이런 생각 밖에 안들어요."
(유병재) "맞아. 그럴 땐 왜그렇게 시간이 안가는거야? 이 순간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는데."
-표현했던 것 중에 가장 난해하고 어려웠던 것이 있다면요.
(박두식) "떡이죠. 무대 오르기 전에는 그저 '나는 떡이다'라고 외적인 것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박신양 선생님께 호되게 지적을 받은 뒤에야 쓰레기 통에 버려지는 떡을 상상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절로 눈물도 흐르고 정말 '내가 떡이 됐구나'하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요."
(이진호) "(한숨) 다 어려웠어요."
(유병재) "그 중에 하나를 꼽자면 첫 날 각자 하고 싶은 롤모델 연기를 하는 과제가 있었거든요. 방송에는 짧게 나갔지만요. 그때 제가 박신양 선생님이 나왔던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했던 연기이기도 하니까 된통 당했죠."
(박두식) "선생님 연기를 할 용기가 어떻게 나왔어? 대단한데."
-'배우학교'에서 '질문 지옥'을 빼놓을 수는 없죠.
(이진호) "완전 '답정너'에요. 선생님이 정해놓은 대답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대답이 안나오니까 계속 물어봐요. 나올 때까지. 식은땀이 줄줄 나죠."
(유병재) "와 이진호 큰일났다. '답정너'라니. 박신양 선생님 어떻게 보려고 하하. 저는 자기소개 할 때 스트레스 때문에 갑자기 위에 통증이 생겼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놀라서 저를 막 주무르셨잖아요. 그 순간 부담스럽기 보다는 마음이 풀렸어요. 제가 여자도 아닌데 마음이 사르르 녹더라니까요. 박신양 선생님이 그런 '밀당'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배우학교'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것은 뭔가요.
(이진호) "첫 번째로 저에 대한 자아를 되찾은 것 같아요. 진심으로요. 나를 돌아보는 느낌이에요. 시청자들도 말씀하는 것이 있는데, '배우학교'를 떠나서 '인생학교'였어요. 연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배우학교' 출연 전 저에게 연기는 어슬프지만 않게 표현하면 그런대로 잘하는 건줄 알았거든요. 그게 아니었어요. 박신양 선생님이 항상 했던 말이 '믿어지는 순간이 있었냐'에요. 그런데 저 또한 제가 연기를 하면서 제 자신이 믿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배우분들이 인터뷰 할 때 역할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힘들었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이해가 안됐거든요. 포장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돼요."
(박두식) "정말 인생 공부한 것 같아요. 평소에도 제가 포장을 하려고 하더라고요. 똑똑해보여야되고 잘나보이도록요. 배우는 본능으로 살아야되는데 제가 꾸미려고 하더라고요. '배우학교'는 그걸 깨뜨리게 한 프로그램이에요."
(유병재) "그 짧은 시간에 제가 연기를 많이 배운 것 같지는 않아요. 이런 얘기가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많이 가르쳐주셨음에도 제가 연기가 늘었다고 말하기는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도 얻은게 있다면 무언가를 배우는 자세를 알게된 것 같아요.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것이라든가 코미디를 할 때도요. 마지막 날 발표할 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박신양 선생님이 프로그램의 중심이었죠. 어떤 사람인가요.
(이진호)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다 걸려요. 선생님 자체가 무섭지는 않은데 내 안의 것들을 다 맞춰버리니까 그게 무서울 떄는 있어요. 박신양 선생님은 '배우학교'에서 예능을 하지 않았어요. 대본도 없고 제작진도 다 모니터로만 우리를 지켜봤거든요. 말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들이 다 즉흥적이라는 얘기죠. 옆에서 본 결과 정말 꽉 찬 사람인 것 같아요. 똘똘 뭉쳐있어요. 뭐든 지식이든 뭐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끊임 없이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을 몸에 지니고 있으니까 자판기처럼 정답이 바로바로 나와요." "
(유병재) "욕하는 상사는 차라리 덜 무서운데 다 맞는 말을 하면서 화도 안내는 상사가 더 무섭잖아요. 박신양 선생님은 딱 그런 분이에요."
(박두식) "감히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사람이죠.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잖아요. 감사한 마음뿐아죠. 사실 처음에 선생님이 저를 찍은 줄 알았어요. '제대로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신줄 알았거든요. 정말 부담이 많이 됐어요. 무대 위에서 포장 없이 다 벗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거잖아요. 그런데 심지어 질타까지 하니까 갈데가 없더라고요. 낭떠러지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 결국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깨는 과정이더라고요."
-박신양씨가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요.
(유병재) "밥 먹을 때마다 시를 지었다. 아침 점심 저녁 매일 했어요. 시를 지은 것이 통과되어야 먹었어요. 한 번은 정치적인 농담을 했는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오늘만 삽니다'했더니 선생님이 '오늘만 살지 말고 지금만 살아라'라고 하더라고요. 순간에 집중하라는 거죠.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진호) "과감하게 시도해라. 과감하게 실수해라라는 말이랑, '꿈을 갖고 사랑하고 추구하고 시도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라는 말이요."
(박두식) "'배우학교' 출연 전에 방황을 많이 했어요. 연기도 잘 안되고.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게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느꼈던 것이 '진실을 찾아라'에요. 선생님이 '연기를 왜하냐'고 계속 물어봤을 때 제가 '시대의 대변인이 되고 싶다'고 답했어요. 전 진심이었는데 전달은 잘 안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