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은 왜 박주현을 선발로 점찍었을까
최하위 후보였던 넥센이 희망가를 부른다. 투수 박주현(20)은 그 콧노래를 가능케 한 핵심 인물이다.
넥센의 초반 행보가 거침 없다. 9경기에서 5승1무3패로 1위. 아직 순위는 큰 의미가 없지만, 미리 이겨놓는 게 나쁠 리 없다. 뚜껑을 열면 열수록 희망의 빛이 더 많이 보인다. 대표적인 존재가 오른손 선발투수 박주현이다.
2015년 입단해 올해 1군 마운드에 처음 오른 투수.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시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그러나 등판 두 번만에 벌써 화제의 인물이 됐다. 박주현의 주무기는 체인지업, 하지만 다른 장점도 있다
◇공을 '집어 던진다'
키 186㎝, 몸무게 99㎏. 굳이 숫자를 보지 않아도 큼지막한 체격이 한눈에 들어온다. 몸만 큰 게 아니다. 배짱도 덩치 값을 한다. 9일 잠실경기에서 박주현을 처음 본 두산 김태형 감독은 "배포가 커 보인다. 어린 투수가 직구로 과감하게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오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볼끝도 좋다. 입단한 지 좀 된 신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박주현은 9일 두산을 상대로 5이닝 8피안타(2홈런) 5실점을 기록했다. 썩 좋은 성적은 아니다. 그러나 넥센 손혁 투수코치는 고개를 저었다.
"5점을 줬어도 끌려 간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나. 볼넷이 없어서 그렇다"라며 "한 마디로 공을 '집어 던지는' 스타일이다. 직구가 보통 시속 140~143㎞ 정도인데도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게 던지니까 상대 타자들도 '아, 뭐가 있나' 하고 만만하게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을 잘 숨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장점도 있다. 디셉션(Deception·투구시 공을 숨기는 동작)에 능하다. 타자들은 공이 눈에 보여야 타격 타이밍을 잡는다. 박주현은 손에서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잘 숨긴다. 타이밍 계산이 어렵다.
손 코치는 "팔이 앞으로 나오는 게 하나도 안 보인다. 체격이 커서 그런지 더 잘 감춰지는 것 같다"고 웃으며 "디셉션은 일부러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건데, 처음부터 잘 배운 것 같다. 디셉션을 시도하다 다른 부분이 무너지는 투수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확실한 장점이 있다면, 단점을 고치기보다 그 장점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손 코치는 "주현이는 누가 뭐래도 절대 투구폼에 손댈 필요가 없다"며 "투구 뒤 몸이 왼쪽으로 쏠리는 점만 지적하면서, 중심을 앞으로 잡아 힘을 옆이 아닌 앞으로 쓰는 것만 잊지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발전 가능성이 더 많다
아직 첫 승도 따내지 못한 새내기 투수다. 3일 고척 롯데전에서는 5이닝 5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불펜이 승리를 날렸다. 9일에는 4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가다 5회에만 홈런 두 방을 맞고 5실점했다.
그러나 지금 박주현에게 중요한 것은 승수가 아닌 경험이다. 염경엽 감독은 "경기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시기"라고 했다. 손 코치도 '1~4회 박주현'과 '5회 박주현'의 차이를 묻자 "공은 똑같았다. 선발투수로서 경험의 문제였다"고 단언했다.
"선발투수가 처음이다 보니 줄 점수는 줘도 된다는 걸 아직 모른다. 이번 이닝에서 끝낸다는 마음이 아니라 다음 이닝까지 미리 생각하다 오히려 맞았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손 코치는 5회 2사 2·3루서 두산 정수빈에게 맞은 초구 3점홈런이 박주현에게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기대보다 값진 기회를 얻는다
손 코치는 "박주현은 기본적으로 좋은 자질을 갖췄다. (구단이) 잘 뽑은 선수"라고 했다. 일단 좋은 자원이 있어야 코치와 트레이너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 박주현은 넥센이 잘 고른 모종이다. 이제 볕 아래 내놓고 물을 주고 있다. 염 감독은 10일 잠실구장 더그아웃 뒷편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박주현을 불러 세웠다.
선발투수가 투구수 70개 이후에 경기를 운영하는 방법을 한참 얘기했다. 감독도 박주현의 성장이 욕심난다. 염 감독은 "지금 당장 박주현에게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박주현은 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까. KBO리그는 또 한 명의 묵직한 투수를 얻을 수 있을까.
배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