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무너뜨린 경험과 지혜를 품고 있는 한국 축구 '전설'들의 외침이다. 한국 축구 역사에 이란전 승리를 안긴 주역 '5인'이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조추점 결과를 본 뒤 이구동성으로 '한 목소리'를 냈다.
조광래(62) 대구FC 사장과 하석주(48) 아주대 감독, 허정무(61)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최강희(57) 전북 현대 감독, 그리고 김도훈(46)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시대, 다른 대표팀에서 감독 혹은 선수로 이란을 침몰시킨 '영웅'들이다.
한국 축구가 2018 러시아월드컵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난적 이란을 만나자 우려의 시선이 많다.
지난 1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조추첨 결과 한국은 이란, 우즈베키스탄, 중국, 카타르, 시리아와 함께 A조에 포함됐다. 한국은 이란과 역대 전적에서 28전9승7무12패로 열세다. 최근 3연패를 당했다. 그리고 한국은 2무4패로 이란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이란(42위)이 한국(56위)보다 높다. 아시아에서 한국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적이 이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선배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우려의 시선에 일침을 놨다.
"이란은 지레겁먹을 만큼 가치를 가진 적(팀)이 아니다. 한국이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팀이다."
과거 이란전 승리의 주역 5인은 왜 이렇게 확신하는 것일까.
이유가 있었다. 단순한 애국심이나 후배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란 격파의 비결을 알고 있었다. 또 후배들의 경쟁력을 신뢰했다.
하석주 감독은 "이번에 반드시 이란 징크스를 깰 거라 내가 장담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원정 첫 승리를 응원했다.
한국의 이란전 9승 가운데 5승을 책임진 주역들이 '값진 승리'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중에서도 조광래 사장은 한국의 마지막 이란전 승리 주인공이다. 2011년 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은 윤빛가람의 선제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당시 감독이 조광래였다.
2001년 4월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김도훈이 골을 터뜨린 한국이 LG컵 4개국 친선대회에서 이란을 1-0으로 격파했다. 허정무 감독은 2000년 10월 레바논 트리폴리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 이란전을 2-1로 이끈 감독이었다.
하석주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이란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긴 기억을 지녔다. 지난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에서 한국은 3-0 대승을 거뒀다. 하석주는 한국의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최강희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 2연패를 당한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지만 선수 시절에는 이란 격파의 중심이었다. 지난 1988년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수비수 최강희는 투지 넘치는 수비력을 선보이며 이란의 공세를 모두 막아냈다. 결국 한국은 3-0 완승을 챙겼다.
물론 자신들이 상대했던 이란과 지금의 이란은 다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축구의 경쟁력이 이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확신했다.
◇조광래 "강한 압박이 주효했다"
조광래 사장은 이란전 승리 핵심을 압박이라고 강조했다.
조 사장은 "우리가 공격을 하다가 공을 뺏기면 이전에는 뒤로 물어나 수비 전열을 맞췄다. 하지만 이란전에는 공을 뺏기지마자 압박을 시도했다"며 "상대 골키퍼가 공을 잡을 때까지 우리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당시 압신 고트비 감독이 많이 당황하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경기도 이겼지만 경기 내용면에서도 리드를 했다. 역대 이란전 중 가장 좋았던 경기였다고 생각한다"며 "이란을 전략적으로 연구를 할 때 내가 했던 경기를 한 번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후배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는 한국 선수가 체격, 체력적으로 이란에 밀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한국 선수가 더 월등하다. 게다가 유럽을 경험한 선수들도 한국이 더 많다"며 "지금 이란은 두려워 할 상대가 아니다. 이란이 우리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자신했다.
◇하석주 "이란 징크스 반드시 깨진다"
하석주 감독은 이란 전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 감독은 "우리 때나 힘든 팀이었다. 알리 다에이 등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이란과 대등하게 경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전력이 많이 약해졌다. 한국이 이란을 압도할 수 있는 상황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리전에만 말려들지 않는다면 승리를 확신하다고도 했다.
그는 "최근 한국은 경기 내용은 좋은데 역습으로 한 방 먹고 무너졌다. 이어 시간을 끄니 말려 들어갔다. 여기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이 조급해 하지 않고 선제골을 넣는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슈틸리케 감독님이 실점을 하지 않는다. 이란에 역습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올해 이란 징크스는 반드시 깨진다. 내가 장담한다"고 힘줘 말했다.
◇허정무 "빠른 현지 적응 권한다"
허정무 부총재는 이란 원정에서 환경 적응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허 부총재는 "이란이 예전보다 강하지 않다. 실력이나 위상 면에서 과거보다 위축됐다. 한국 축구 발전 속도에 비해 늦다. 이란이 껄끄럽다고 하지만 전력도 한국이 앞선다"며 한국의 우세를 예측했다.
또 "문제는 환경적 요인이다. 이란 원정 경기장은 고지대다. 산소가 부족해 선수들에게 힘든 것이다. 선수들 컨디션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며 "여건이 된다면 이란에 조금 빨리 도착해 현지 적응을 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컨디션 조절이 잘 되면 더 좋은 모습 보일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최강희 "이란과의 과거를 털어내야 한다"
선수로서 이란에 승리했지만 감독으로서 이란에 패배만 한 최강희 감독이다. '애증의 팀'이기에 조언할 것도 많다.
최 감독은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빨리 이란전 과거를 털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금 한국은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고 이란보다 상승세다. 한국은 강해졌고 이란 징크스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나쁜 징크스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정 경기는 외적인 요인에 신경이 쓰인다. 축구로 한국에 이란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신뢰도 보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도 이란 원정 치러 본 경험이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알 것이다. 그것만 극복하면 승리할 수 있다"며 "누군가는 징크스를 끊어야 하고 시기적으로 지금이 적절하다"고 확신했다.
◇김도훈 "해외파 선수들 경험 살려야"
김도훈 감독은 해외파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김 감독은 "솔직히 이란전에서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어려운 상대였다. 승리한 다음 기분이 무척 좋았던 것이 생각난다. 이란이 힘으로 하는 축구를 했다"고 결승골 당시를 기억했다.
지금은 핵심 유럽파에게 골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란 축구 스타일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한국이 볼 소유를 많이 해서 패스를 늘여 경기를 하면 잘 풀릴 것"이라며 "한국에는 유럽파 선수들이 많다. 그들의 경험을 잘 살리면 좋은 경기 할 수 있다"고 승리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