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살이 된 배우 한효주. 전작 '뷰티인사이드' 를 끝낸지 얼마 안 됐는데 그 새 또 다른 깊이감이 생겼다. 연기의 소중함을 알아갈수록 더욱 무르익어가는 듯 하다. 그는 매 작품,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촬영하는 내내 즐겁다는 한효주. 13일 개봉한 '해어화(박흥식 감독)' 역시 같은 마음으로 임했다. '해어화'는 정가·안무·일본어·노역 분장 등 유난히 도전해야할 분야가 많았다. 배움의 시간이 길고 힘들었지만 이 과정 또한 행복하게 즐겼다. 그래서일까. '해어화' 속 한효주의 연기는 전작에 비해 유독 반짝 빛난다. 이전 작품에서 보지 못 한 한효주의 낯선 얼굴은 반갑게 느껴진다.
-'해어화'를 선택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뭔가요.
"여배우로서 욕심나는 시나리오였어요.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해어화'는 여자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인 영화였고, 여배우가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어요.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고요. 그동안 보여드리지 않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장도, 표정도 이전 작품에서 보지 못 한 모습이 영화에 담겼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촬영했어요. 물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요. 사실 스크린 속 제 모습은 역시 낯설어요. 사실 그래서 걱정도 많이 했어요. 제가 봐도 제 얼굴이 낯선데 관객들은 오죽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후반에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에서 드러난 소율의 표정은 사실 그 전 작품에선 보여드리지 않은 모습 중 하나죠. 연희한테 '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제 얼굴이 무섭더라고요. 저에게 저런 얼굴이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얇고 길게 눈썹을 빼는 메이크업은 제 아이디어였어요. 당시 기생 엽서나 사진집을 보면 실제로 화장을 그렇게 했더라고요. 그 포인트를 살리고 싶어서 감독님께 제안했죠."
-일본어·정가·안무 등 보여줄 게 많은 캐릭터를 소화했어요.
"그 많은 걸 준비하는 건 사실 쉽지 않았어요. 물론 배우는 과정에서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준비하면서 역할에 더 몰입할 수도 있었고요. 이번 작품을 위해 3~4개월 동안 일본어·정가·안무 등을 배웠어요. 정가를 소화하려고 국악채널도 듣고 다니고, 기생에 관련된 소설집도 찾아서 읽고, 영화의 배경인 1930~1940년대 잡지를 모아둔 책도 읽어봤죠. 그 시대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연기한 소율의 대사 중에 '왜 그땐 몰랐을까요'라는 게 있잖아요.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다 담은 대사라고 생각해요. 세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도, 소율과 연희(천우희)의 관계도 그 당시엔 몰랐던 것에 깊은 회한이 담긴 말이죠. 연희와 소율의 관계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가 아니라 모차르트와 모차르트의 이야기예요. 서로 다른 쪽으로 재능이 뛰어난 것이죠. 각자 잘하는 게 분명히 있는데 그걸 모르고 열등감을 느끼고, 질투심에 파멸해나가는 비극적인 이야기에 포인트를 두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해어화'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데뷔 처음 노역 분장을 했죠.
"어떻게 보실지 너무 궁금해요. 노역을 두고 참 많이 고민했어요. 어떤 게 더 옳은지 고민하다가 영화를 위해 분장하기로 결심했죠. 감독님은 영화의 메시지가 담긴 마지막 대사를 노인 역할의 다른 배우가 하는 것 보다 제가 노역 분장을 하고 내뱉길 바라셨죠. 제가 노역 분장을 한 것에 분명히 호불호는 갈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해도 제가 노인이 아니니 어색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테고요. "
-노래 부르는 신이 천우희 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었어요.
"아쉬운 부분이 있죠. 촬영을 하거나 연습할 땐 완창을 했는데 그게 다 담기지 않아서 아쉬웠죠. '사랑 거짓말' 노래는 녹음도 힘들게 했어요. 그 노래가 제일 마지막에 나온 노래거든요. 거의 촬영 막바지에 노래를 받아서 한 달 정도 연습하고 녹음을 했어요. 하루 종일 녹음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 이제 캐릭터를 놓아줘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다시 부르면 좋겠다'고 하셔서 녹음을 다시 했어요. 더 처절하게 불렀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며칠 더 연습한 뒤 다시 녹음을 했죠."
-원래 노래를 잘 하는 편인가요.
"듣는 것만 좋아해요. 잘하진 않아요. 혼자 노래방엔 잘 가요.(웃음) 사람들과 즐기러 가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려고 가요. 예전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 관람까지 시간이 30분 정도 비면 근처 노래방에 가서 30분이라도 노래를 부르고 응어리를 풀고 오기도 했죠."
-스토리나 영화의 구조 때문인지 천우희와의 연기 대결을 보는 듯 했어요.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여자 캐릭터 둘이 이끄는 영화가 많지 않으니깐요. 그런 시나리오였다는 데 감사하죠. 또 여자 캐릭터 중 한 명을 천우희가 했다는 것에도 고마워요. 우희가 연희를 연기했기에 더 영화가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너지도 확실히 있었고요. 같이 연기하면서 연기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어요. 에너지가 남다르더라고요."
-한효주씨는 빠른 87년생이고, 천우희씨는 87년생인데 친구하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족보가 좀 꼬였죠? (웃음) '뷰티 인사이드' 때 처음 만났는데 그 때 친구하기로 했어요. 저도 우희처럼 그냥 87년생이고 싶네요.(웃음)"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양한 장르나 캐릭터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여요.
"시나리오를 우선으로 작품을 선택했어요. 어떤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마음 보다는 작품이 좋으면 출연을 했죠. 역할의 크기는 상관없어요. 장르도 상관없고요. 인디영화나 작은영화도 시나리오가 좋으면 하고 싶어요."
-올해 서른이에요. 30대가 되면서 세운 계획은 있나요.
"계획을 세우는 건 무리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이 작품이 마지막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헤어화'때도 그랬어요.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촬영했어요. 그간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좋은 쪽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이 깨부서졌어요. 제 안에서 자각하지 못 했던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연기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순간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우는 어쨌든 선택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어느 순간 아무도 저를 찾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에 불현듯 그 생각이 들면서 혼자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 번 크게 울고 나니깐 오히려 더 많이 내려놓게 되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작품 제안을 해주시고, 연기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감사해요. 요즘엔 오랫동안 연기를 하는 선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존경심이 생겨요. 저도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소율과 연희처럼 평소 고민을 털어놓는 연예계 절친이 있나요.
"남사친은 이승기예요. 군대 가더니 저보고 사인 보내달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한 20장 사인해서 보냈어요. 정말 편한 친구예요. 여자 배우 중 오랜 친구는 '로맨스가 필요해'에 나온 정유미 언니예요.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일을 시작했고, 오디션도 같이 보러다녀서 언니랑은 각별한 사이에요. 같이 작품을 했던 배우들과도 대부분 잘 지내는 편이에요. 매일 연락하긴 힘들지만 가끔 연락해도 편하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 많아요."
-'해어화'를 찍으면서 어떤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을 것 같아요.
"영화를 찍어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그런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해요. 요즘엔 결혼을 다 늦게 하는 편이라 괜찮지만 그래도 서른이기도 하고,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고요.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하면 되나에 대한 생각도 하고요. 좀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하는 시기예요. 사랑이 뭔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작품에서 사랑 받는 역할만 하다가 이번엔 사랑을 갈구하는 역할을 했어요. 어느 쪽 사랑이 더 좋은가요.
"사랑을 받고 싶죠. (웃음) 그런데 요즘엔 사랑을 할 수 있는 것도 참 큰 용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2010년 방영된 '동이' 이후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해요.
"MBC 드라마 '더블유'를 해요. 5월 초 부터 촬영을 시작할 것 같아요. 반 사전제작처럼 진행되는 드라마고요. 방송은 7월이 될 것 같아요. 대본이 좋아서 선택했어요."
-KBS 2TV '태양의 후예'처럼 중국 등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좋겠죠. 한국 드라마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태양의 후예'의 인기를 보면서 제가 출연하지도 않았는데 배우로서 자랑스럽고 신기하고 그랬어요.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김연지 기자 kim.yeonji@joins.com 사진=박세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