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우의 역설, '몸 상태가 좋아지니 더 빨리 다친다'
“팔이 떨어진다.”
투수 코치들이 가장 우려하며 하는 말이다. 혹사에 지쳐 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투수는 정상적인 팔 각도로 스윙을 하지 못한다. 손에서 공을 놓는 릴리스포인트가 낮아진다.
선수 재활과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 중인 차명주 KBO 육성위원은 “릴리스포인트가 낮아지면 위험하다는 건 야구 현장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제 국내 일부 구장에는 레이더로 릴리스포인트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 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인 신동윤씨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부상과 릴리스포인트 사이 관계를 추적했다.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넥센 오른손 투수 조상우는 지난해 리그 전체에서 세 번째로 많은 93⅓이닝을 던진 구원 투수였다. 그는 결국 올해 초 팔꿈치에 피로골절이 발견돼 시즌을 접었다. 팔꿈치 인대재건수술까지 받았다.
2015년 5월과 10월, 조상우의 릴리스포인트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통념과는 반대였다. 5월 3경기에서 던진 직구 49개의 릴리스포인트 높이는 156cm였고, 수직축에서 오른쪽으로 53cm 떨어져 있었다. 반면 10월 7경기 141구에서는 높이 173cm, 가로 27cm였다. 릴리스포인트가 좀 더 높아지고, 좀 더 몸에 가까워졌다.
지난해 구원 투수로 리그 최다인 112이닝을 던진 한화 권혁의 경우를 보자. 권혁의 릴리스포인트 높이는 6~8월 거의 일정했지만, 수직축에서 15cm 가까이 멀어졌다. 송진우 KBSN SPORTS 해설위원은 “전반기 권혁은 하체를 잘 사용했다. 하지만 후반기엔 지친 탓에 축이 되는 왼쪽 무릎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팔은 떨어졌지만, 무릎이 높아져 릴리스포인트 높이가 일정하게 측정된 것이다. 조상우와는 반대 케이스다. (본지 2015년 8월 27일자 기사 ‘권혁·박정진·윤규진 혹사, 레이더가 추적했다’ 참조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532827&cloc=)
이에 대해 KIA와 NC 팀 닥터인 이상훈 CM충무병원 원장에게 문의했다. 이 원장은 “조상우는 시즌 후반기로 갈수록 오히려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하체에 힘이 빠지면서 릴리스포인트가 올라가는 것은 피로 누적 증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릴리스포인트가 올라가면서 몸통 쪽으로 붙었다면 허리를 옆으로 더 틀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허리 근력이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5~10월 조상우의 직구 스피드는 줄지 않았다. 경기 영상에서도 5월보다 10월에 하체가 낮아지고, 팔 스윙이 안정됐다는 게 확인된다. 허리 근육도 더 강하게 쓴다. 조상우는 지난해 8월께부터 릴리스포인트를 올리는 폼으로 바꿨다. 그만큼 무리는 따르지만 전문가의 견해로도 새 폼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조상우는 ‘몸 상태’가 좋아졌음에도 부상을 당했을까. 역설적으로 ‘몸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에 부상이 진전됐다는 게 이 원장의 진단이다.
조상우의 부상 부위가 뼈와 인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근육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뼈와 인대는 강화가 불가능한 인체 조직이다. 이 원장은 “강한 힘으로 시즌 마지막까지 던질 수 있는 힘과 체력이 있다보니 정작 뼈와 인대에는 무리가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조상우는 입단 때부터 인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어느 정도 파열됐던 상태였다. 지난해에 더 상태가 악화되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넥센은 어느 구단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강조하는 팀이다. 야수들의 홈런 파워와 투수들의 강속구는 여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강화된 근육은 특히 팔꿈치 인대에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의 젊은 투수들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혹사로 팔꿈치가 손상된 상태에서 프로에 입단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견된다. 투수들의 어깨 부상은 줄어들고 있지만, 팔꿈치 부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투수들이 훨씬 적은 이닝을 던짐에도 그렇다. ‘어깨 부상은 투구 수, 팔꿈치 부상은 직구 스피드와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야구학회(SABR) 회원인 제프 짐머맨의 연구에 따르면 2002~2014년 메이저리그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89.6마일(144.2km)에서 91.6마일(147.4km)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토미존 수술, 즉 팔꿈치 인대재건수술 빈도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더 강화된 몸이 팔꿈치 인대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 원장은 “릴리스포인트나 구속, 근력 등 여러 데이터는 지난해 조상우의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는 걸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1년을 쉬어야 하는 부상이 나왔다”며 “당장의 성적이나, 의학·운동역학적인 예후에 문제가 없다하라도 1년에 어느 선을 넘어가는 이닝 소화는 자제시켜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투수가 많이 던지는 건 위험하다.
과거 선동열처럼 어떤 투수는 혹사를 버티는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투구가 부상 위험을 높이는 건 확실하지만, 그 한계치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신동윤 분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혹사 여부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록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논리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수가 수술대에 오른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개인의 특성’이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많은 데이터로 선수 상태를 신중하게 체크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특성'이란 무책임한 핑계일 수밖에 없다.”
최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