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생, 한국 나이로 만 41세.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코트 위에 서 있는 남자가 있다. KBL 현역 최고령 선수이자 농구팬들에게는 '4쿼터의 사나이', '태종대왕'이라는 별명으로 더 친숙한 고양 오리온의 클러치 슈터 문태종 얘기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매 시즌이 끝난 뒤 은퇴설에 휩싸이는 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시즌에도 은퇴 대신 코트를 선택했다. 농구 인생의 끈질긴 꿈이었던 우승 반지를 끼워준 오리온의 프로포즈가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오리온은 지난 16일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허일영(31), 김강선(30)과는 5년, 문태종과는 1년 재계약에 각각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우승 멤버 3명을 모두 잡은 '대박' 결과였다. 그 중에서도 잔류와 은퇴, 이적의 갈림길에 섰던 문태종의 재계약 소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토록 간절히 바란 우승의 꿈도 이룬 지금, 문태종은 왜 오리온에서 1년 더 뛰기로 결심했을까. 재계약 이틀 뒤인 지난 18일 상암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문태종의 If... '우승 못했다면?'
-오리온과 1년 재계약을 했다.
"다시 우승을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와서 행복하다. 사실 가족 전체의 의견은 농구를 하고 있는 두 아들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오리온에서 농구를 하는 게 굉장히 재밌었다. 가족들도 지난 시즌 가까운 거리에서 편하게 지내다보니 더 뛰고 싶다는 마음에 동의해 줬다. 지난 시즌 결과와 가족의 의견이 재계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은퇴설이 꾸준히 흘러나왔는데.
"이미 다들 알겠지만 내 지상 목표는 우승이었다. 챔피언 반지 없이 은퇴한다는 건 내 경력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끝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 그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제는 농구를 정말 즐겨보겠다는 생각이다."
-우승 부담이 사라졌다는 얘긴가.
"지난 시즌은 우승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은 그런 부담 없이 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농구를 즐기려면 이겨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이 이기도록 하겠다. 하하."
-만약 지난 시즌 오리온이 우승하지 못했다면 FA 결과도 바뀌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승을 못했다면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나 가족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팀으로 떠났을 수도 있다. 오리온이 전력이 좋고 우승할 수 있는 팀은 분명하지만 그건 우승을 했을 때 얘기고, 만약 우승을 못했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했을 것 같다."
-우승 열망이 강했던 만큼 두 번째 우승도 욕심이 날 것 같다.
"오리온이 지금 같은 상태로 계속 갈 수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선수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KBL 정상급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경기에서 선수들이 서로 뭘 하려고 하는지 실행하기 전에 예측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조직력도 갖춘 만큼 다음 시즌도 오리온은 강한 면모를 보일 거다."
◇문태종,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뛴다는 건
2010년 인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고 KBL에 처음 발을 내딛은 문태종은 올해로 7년째 한국 생활 중이다. 제로드 스티븐슨이라는 이름으로 농구를 하던 그가 문태종으로 한국 무대에 서게 된 계기는 그의 어머니 문성애(60)씨였다.
-문태종의 농구인생에서 KBL에서 보낸 7년은 어떤 의미인가.
"KBL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린다는 아주 특별한 의미다. 어머니의 아들 문태종이 한국에서 뛴다는 의미이자 내게 흐르고 있는 한국의 피를 찾겠다는 의미도 있었다."
-우승하고 어머니가 많이 기뻐하셨을 것 같다.
"무척 행복해 하셨다. '마침내 해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리고 '동생 문태영(38·삼성)은 반지가 더 많으니까 너도 앞으로 두 개는 더 가져 와라'고 하셨다. 하하."
[ 문태종 선수와 그의 어머니. 사진제공 = 문태종 선수 ] -2013~2014시즌 시상식에서 문태종이 정규 리그 MVP, 문태영이 챔피언결정전 MVP를 나눠 가졌을 때 어머니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던 게 기억난다.
"그 날은 내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가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본 것 같다. 어머니가 친척들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드린 것 같아 의미가 깊었다. 은퇴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을 거치고 은퇴한다는 과정 자체가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태종을 어떤 선수로 기억하길 바라나.
"어떤 팀이든 우승으로 이끌 수 있는 선수, 늘 승리를 갈구하고 우승을 원하는 팀에 도움이 됐던 선수로 평가받고 싶다. 그리고 내 별명 중에 '4쿼터의 사나이'가 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별명이다. 이 별명처럼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슛을 날렸던 선수로 기억되길 희망한다."
-문태종에게 오리온이란.
"오리온은 내가 우승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특별한 팀이다. 그리고 여기서 1년 더 뛴다는 건 한 번 더 우승의 꿈을 꿀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얻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