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와 광주 FC의 K리그 클래식(1부리그) 경기가 열린 22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는 평소 듣기 힘들었던 낯선 외국어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인천이 마련한 '베트남 데이'를 맞아 경기장을 찾은 베트남 교민 2000여 명 덕분이었다.
언어와 외모, 문화까지 사뭇 다른 이들은 구장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이벤트에 참여하는 한편 이날 선발로 나선 르엉 쑤언 쯔엉(21·인천)을 응원하느라 여념 없었다. K리그 '1호 베트남 외국인 선수'인 쯔엉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축제를 맞아 '팬서비스'를 확실히 했다. 인천은 베트남어로 안내 방송과 경기 진행 상황을 전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프타임에는 팜 후 찌 주한 베트남 대사와 유정복 인천 구단주가 기념 행사를 하고 우애를 다졌다. 김도훈(46) 인천 감독은 그간 R리그(2군리그)에서만 뛴 쯔엉을 이날 전격 선발로 투입해 56분간 기회를 줬다. 인천이 0-1로 졌지만 쯔엉은 무난한 데뷔전을 치렀다.
◇'축구유학' 온 쯔엉…마케팅 그 이상의 의미
인천이 이번 시즌에 앞서 영입한 쯔엉은 한국 프로축구가 30년 만에 영입한 동남아시아 출신 선수다. 베트남은 객관적으로 한국보다 축구 수준이 떨어진다고 평가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매긴 베트남 남자 축구대표팀의 순위는 145위다. 실제로 첫 1부리그 선발 경기에서 보여준 쯔엉의 모습은 비교적 무난했을 뿐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쯔엉의 영입을 두고 "구단이 마케팅용으로 뽑았다. 실력은 외국인 선수로 뽑을 정도로 빼어나지 않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인천이 이번 시즌 최하위(4무7패, 승점 4점)로 추락하면서 아쉬운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김 감독은 쯔엉이 실력과 함께 마케팅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쯔엉이 단순한 팀의 전력을 넘어서 한국 축구 기술과 철학을 베트남과 동남아시아권으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아직 피지컬 면에서는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미드필더로서 기본 축구 실력과 패스 능력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타이밍을 알고 있다"며 "훈련을 하면서 점점 발전해 나가고 있다. 우리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쯔엉이 성장하도록 앞으로도 기용하겠다"고 실력을 인정했다.
이어 "쯔엉은 베트남에서 혼자 축구 유학을 온 선수다. 쯔엉이 한국 축구를 배우고 또 한국 축구를 베트남에 알리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며 가교 역할의 의미를 전했다.
베트남 교민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날 구장을 찾은 이 유 리(51)씨는 "쯔엉이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기쁘다. K리그는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준의 축구를 하고있다"며 "쯔엉이 한국에서 축구를 배워서 고향에 돌아가 전수한다면 베트남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베트남 국가대표팀 쯔엉은 오는 29일 대표팀에 합류한다. 그간 R리그에서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던 쯔엉은 클래식 무대에서 배운 것들을 대표팀에도 활용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그는 "K리그는 나에게 유럽 축구처럼 '하이레벨'로 느껴진다. 1부리그 경기의 압박감을 경험했다"며 "부족한 면을 보완해 계속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 대표팀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 드라마·K-POP→스포츠까지 확대
베트남은 한국 문화에 우호적인 나라로 통한다. 이미 한국의 드라마와 K-POP 인기가 뜨겁다. 한국 연예인이 현지 광고 모델로 나서고 있고 국내 브랜드 화장품과 각종 공산품 판매도 호황이다.
그러나 '친한'의 나라 베트남에서도 한국 스포츠는 잘 모른다. 이날 구장에서 만난 교민들은 "한국 스포츠 선수?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박지성을 제외하고 잘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쯔엉의 역할이 큰 이유다. 쯔엉이 베트남에 '스포츠 한류'를 조금씩 일으키고 있다. 자국 내에서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서 한국 스포츠를 알리는데 적합하다.
이 유 리씨는 "쯔엉은 베트남에서 인기가 상당히 많은 선수다. 나이가 어리지만 좋은 축구 실력을 갖췄다"며 "봉사활동 등 사회 공헌활동도 많이해서 베트남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선수다. 이미지가 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그는 참신한 이미지의 쯔엉이 인천에 입단하면서 베트남 국민의 머릿속에 '한국의 인천'이 각인됐다는 말도 남겼다.
또 다른 베트남 교민 광 중(34) 씨는 "베트남에서 한국 드라마와 K팝 인기가 상당하다. 하지만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없었던 편이었다"며 "쯔엉이 K리그에 진출하면서 한국 축구에 대해 알게됐다. 점차 양국의 교류 폭이 넓어진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 관계자는 "쯔엉을 보기 위해 구장을 찾은 베트남인들이 많다. 쯔엉과 관련한 상품 판매량도 상당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