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득점은 ‘런(Run)’이다. 뛰고 달려서 홈으로 들어오는 경기다. 하지만 한국 야구는 득점을 싫어하는 것 같다.
KBO리그는 2014년부터 타고투저다. KBO리그 통산 팀 경기당 득점은 4.50점이다. 2013년엔 4.65로 통산 수치와 비슷했다. 하지만 2014년 5.60점으로 급등한 뒤 올해까지 줄곧 5점대다.
현장 감독들 사이에선 “타고투저가 너무 심하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시즌 뒤 감독자 회의에서는 마운드 높이를 높이자는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인내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 2014년 시즌이 끝난 뒤 KBO는 심판들에게 높은 스트라이크를 ‘규정대로’ 판정할 것을 주문했다. 스트라이크존은 야구규칙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만 KBO리그 심판들은 미국에 비해 높은 스트라이크를 잘 잡아주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공인구를 단일화했다. 타고투저에 대한 현장 반발이 촉매제가 됐다. 그리고 올해는 벌써 5월부터 마운드 이야기가 나온다.
마운드 높이를 올리면 투수가 반드시 유리할지는 의문이다. KBO는 1999년 후반 마운드 높이를 10인치에서 13인치로 높인 적이 있다. 그해 프로야구 최초로 경기당 득점이 5점대였기 때문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4.76점이었다.
하지만 이전 3시즌 4.34던 평균자책점은 마운드를 높인 뒤 3시즌 4.53으로 오히려 높아졌다.
물리학자 로버트 아데어는 “마운드 높이보다는 경사도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운드를 높여서 효과를 보지 못하면 외국인타자나 지명타자를 없애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프로야구에서 타고투저와 투고타저가 번갈아 발생해왔다. 그런데 투고타저가 훨씬 많았다. 지난 34시즌 동안 팀 경기당 득점이 4.50점 아래였던 시즌은 20회, 상회했던 시즌은 14회였다. 경기당 5점 이상 시즌은 지난해까지 34년 동안 7번 뿐이다. 그럼에도 타고투저 시즌에 감독들은 유독 불편해한다.
"타고투저 때문에 좋은 투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투고타저 때는 좋은 타자가 적게 나왔다. “투수 기량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투고타저 시절엔 “타자의 발전은 투수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투수가 일찍 무너져 계산이 서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감독도 있다.
하지만 타고투저든 투고타저든 실력이 떨어지는 팀은 진다.
점수가 많이 나면 경기시간이 길어진다는 비판은 그나마 합리적이다. 경기시간 단축은 프로야구 산업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감독이 벤치에서 공 하나하나에 사인만 내지 않아도 경기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진다. 올시즌 KBO리그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19분이다. 지난 29일 퓨처스 6경기는 평균 3시간이 걸렸다. 퓨처스는 1군보다 더 심한 타고투저다.
프로야구는 고객인 팬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야구 팬들이 타고투저를 싫어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2014년 이후 프로야구 평균 관중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TV 시청률도 상승 추세다. 이석재 MBC 스포츠+ 센터장은 “두 팀 모두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 시청률이 가장 높다. 상황으로는 만루 때가 가장 높다”고 말한다.
투고타저가 진행 중인 메이저리그에는 ‘흥행을 위해서는 다득점 경기가 좋다’는 오래 된 믿음이 있다. 그래서 한국과는 정반대로 규칙을 고쳐 스트라이크존을 좁히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왜 한국의 야구 지도자들은 타고투저를 싫어할까. 투수가 잘 던진 공은 어떤 강타자도 치기 어렵다. 안타와 홈런은 대개 실투의 결과다. ‘지도자’의 눈에는 타고투저는 ‘잘못된 플레이’가 많아진 결과로 비칠지 모른다.
‘야구’와 ‘판결’에 모두 조예가 있는 조용빈 변호사(KBO 야구발전위원)는 KBO리그 심판들이 높은 스트라이크에 인색한 이유를 “높은 공은 나쁘다고 선수 시절부터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