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와 NC가 맞붙은 지난 5월2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는 경기 내용보다 그라운드 위에 펼쳐진 '종교 전쟁'이 화제가 됐다.
NC 2루수 박민우는 이날 1루와 2루 사이에 스파이크로 불교를 상징하는 '卍'(만)자를 그렸다. 박민우는 평소 이 공간에 작은 卍자 하나 정도를 그린다. 하지만 이날을 달랐다. 하나, 둘 쓰기 시작한 卍자는 20여개로 늘어났다. 그라운드 흙 위에 卍자가 가득 차 있는 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같은 위치에서 수비를 하는 KIA 내야수 서동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서동욱은 卍자 사이에 십자가를 그려넣었다. 이를 두고 야구 팬들은 "그라운드의 종교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박민우는 "2루 수비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 卍자를 그렸다. 절실한 마음을 표현한 것인데 이렇게 큰 이슈가 될 지 몰랐다"고 밝혔다. 서동욱은 "박민우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먼저 연락을 해서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서로 잘하자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정확한 집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프로야구 선수 다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선수들이 믿는 종교는 크게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로 나뉜다.
이들에게 종교는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통용된다. 대기록을 달성하거나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난 뒤 갖는 인터뷰에서 종교적 단어가 들어간 소감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선수들이 종교를 갖게 되는 과정은 다양하다. 집안 내력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지만, 선·후배를 통해 종교에 귀의하는 사례도 있다.
이만수 KBO 육성부위원장은 기독교 신자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는 신앙을 바탕으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 것이 16시즌 동안 건강하게 현역 생활을 한 원동력으로 꼽고 있다. SK 감독 재임 시절에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교회 예배를 빼놓지 않았다.
현장에서 물러난 그는 전국의 교회를 다니며 교인들에게 자신의 철학인 'Never Ever Give Up(포기하지 말자)' 강의를 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노경은(롯데)은 안수 기도를 받으며 힘든 시절을 극복했다고 한다.
특정 종교를 믿는 선수가 많은 구단도 있다. 롯데가 대표적이다. 롯데 관계자에 따르면 간판 스타 강민호를 비롯해 손아섭·김문호·박종윤·문규현·손용석 등 선수단 절반 이상이 불교를 믿는다.
롯데 출신 이대호(시애틀)와 홍성흔·장원준(이상 두산)도 불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대호는 지난 2011년 조계종 홍보대사에 위촉됐다. 장원준은 자신의 선전을 기원하기 위해 다니는 절에 공양탑을 세우기까지 했다. 장원준은 "집안 내력이다. 부모님이 불교를 믿으신다"고 이유를 밝혔다.
선수들은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와 용품에 나타낸다. 모자 챙 안쪽이나 글러브 한면에 卍자 또는 십자가를 새긴다.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액세서리를 착용하기도 한다. 글러브 제작업체 관계자는 "선수들이 글러브를 주문을 할 때 종교 표식을 함께 넣어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투수는 글러브의 웹(WEB) 부분이 막혀있는데, 그쪽에 종교 표식을 많이 새긴다. 드러내기 싫은 선수들은 볼집이나 내측부에 넣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종교적 행동을 제한하는 관련 규정은 없다.
2016년 KBO 리그 규정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 9항에는 "헬멧, 모자 등 야구용품에 지나친 개인 편향의 표현 및 특정 종교를 나타내는 표식을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상대팀의 항의가 없으면 종교 표식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고 있다. 박민우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KBO 관계자는 "그라운드에 그림을 그리는 걸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대신 상대 팀에서 항의하면 지워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