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데뷔 20년 차에 접어든 배우 김명민(43)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유쾌한 입담의 소유자다. 하지만 연기에 있어선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하는 스타일. 어떻게 하면 관객들과 좀 더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배우였다. 이번 영화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했느냐고 묻자 김명민은 "소설을 많이 썼다"라고 답하며 웃었다.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것 외에 주인공 필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필요했고, 결국 골똘히 캐릭터에 대해 연구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베테랑은 역시 달랐다.
16일 개봉하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최고의 사건 브로커 김명민(필재)이 사형수로부터 특별한 편지를 받은 뒤, 경찰도 검찰도 두손 두발 다 든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배후세력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유쾌한 범죄수사 영화다. 지난해 초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을 통해 조선의 능글맞은 명탐정으로 두 번째 관객몰이에 나선 김명민은 4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시리즈물의 딜레마를 보기 좋게 웃어넘겼다. 이번에도 그 기세를 몰아 6월 충무로 경쟁에 뛰어든다.
-완성된 영화를 어떻게 봤나.
"평소 내가 촬영한 영화를 볼 때 실망할 것을 염려해 기대하지 않고 본다. 근데 '특별수사'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봤다. 우리 영화가 맞느냐고 할 정도로 편집이 잘됐더라. (김)상호 형이랑 편집된 걸 기술 시사 때 처음 보고 만족해서 술을 엄청 마셨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스피드한 진행이 좋았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무거운 내용이었다. 감옥에서 온 편지 내용을 시작으로 해서 칙칙하기도 하고 스릴러 분위기도 났다. 근데 제목이 바뀌고 편집이 경쾌하게 진행되다 보니까 통쾌한 영화가 됐더라. 관객이 보기에 좀 더 편한 영화가 된 것 같다."
-제목이 바뀌었다.
"원래 제목이 '감옥에서 온 편지'였다. 처음에 감독님이 '특별수사'로 제목을 바꾼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200%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감옥에서 온 편지'란 이름을 달고 있어서 그게 익숙해졌던 건데 지금 제목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이전 제목은 굉장히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웃음)"
-작품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 부분이 아니라 관계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한테 왜 그러냐'는 대사부터 우리 영화를 시사하는 점이 있다. 그게 지난해 흥행했던 '베테랑'이나 '내부자들'과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작위적으로 울어라, 웃어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작위적이지 않은데 앞과 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게 끌렸다."
-다양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신구·김영애 선생님부터 상호 형·(성)동일이 형·김향기 등 워낙 다양한 배우들이 나와서 촬영이 재밌고 설렜다. 내로라하는 베테랑들이 아닌가. 그냥 연기하는 거 보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대로 리액션을 해주면 끝이었다. 이런 게 연기를 하면서의 쾌감이라는 걸 느꼈다. 각각의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씩 던져주니까 휴게소에 들러 힐링하는 느낌이랄까.(웃음) 쉬어가는 코너 같았다. 처음과 끝을 이끌고 가는 입장에서 편하고 복 받은 영화였다. 몇 번 죽을 뻔했고 감독님과 개인 면담도 두 번 했지만 그분들 덕에 촬영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김향기의 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향기는 전체적인 색깔이 참 좋다. 뭔가를 특별하게 하지 않아도 그 나잇대에서 나오는 순수하고 맑은 에너지가 좋다. 요새 아이들이 가식적이고 거짓말도 잘하는데 그런 게 아예 없는 아이였다. 뭔가 꾸며서 말하는 게 없었다. 그런 부분이 연기에 그대로 드러났다. 향기와 연기할 때 눈을 볼 때마다 솔직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부끄러웠다.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향기에게 삼촌 연기가 이상하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
-신구·김영애 선생님과의 호흡은 어땠나.
"신구 선생님은 분량이 적지만 연기인지 진짜인지 모를 정도로 편하게 툭 던지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나왔다. 김영애 선생님은 소녀 같은데 촬영만 시작되면 표독스러운 표정과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귀에 딱딱 꽂히는 발음과 성우 같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촬영장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소름이 끼쳤다. 듣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졌다."
-영화에서 시도한 애드리브가 있다면.
"해도 별로 안 웃겨서 안 한다. 애드리브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 (이)한위 형이나 동일이 형은 재능을 타고났다. 감독님이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자연스럽다. 뒷부분에 애드리브가 들어가면 타이밍적인 부분을 감 잡을 수 없지만 신선하고 좋았다. 동일이 형은 활력소였다. 다만 심각한 장면에서만 스킨십 같은 걸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성동일과 배우 대 배우로 처음 만났다.
"일단 형이 해준다고 했을 때 너무 고마웠다. 20여 년 전의 과거 얘기들을 하면서 마음을 열고 갔지만 오랜만에 만났을 땐 좀 어색함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촬영하면서 어색함이 풀렸다. 내가 알던 형의 모습이 나오더라.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연기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한다. 코 다치고 나서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가는 신이 있다. 동일이 형이 나의 변호인으로 오는데 굉장히 뭉클하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했다. 형이 변호사로 보인 건 처음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개봉 시기를 5월에서 6월로 연기했다.
"5월에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예정대로 개봉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는데 연기하길 잘한 것 같다. 제작사에서도 이미 홍보를 시작한 상태였기에 개봉 연기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여러 상황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던 것 같다."
-권종관 감독이 드라마 '하얀거탑'에서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보고 캐스팅했다고 하더라. 의사 역할에 또 도전할 생각이 있는가.
"의사 역할이 또 들어온다면 했던 거니까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구도 다 있으니까.(웃음) 이식 수술 같은 과정은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엔 맹장 수술을 당장 할 자신이 있었다."
-이번 역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나.
"소설을 많이 썼다. 동현(김향기)과 상태(김상호)는 대본에 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근데 필재는 왜 돈만 아는 속물근성이 되었는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필요했다. 어린 시절 필재, 할아버지가 필재를 도맡아 키운 사연, 이후 필재의 생활 등 나름의 소설을 써서 준비했다. 며칠 동안 벌어진 사건이 영화에 펼쳐지는 것이기에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했다. 속물 근성에서 변화하는 시점이 필요했고 이와 관련해 관객들을 어떻게 이해시킬까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속편이 준비된다면.
"영화가 잘 된다면 또 할 생각이 있다. 일탈을 자꾸 하면 안 되지만 필재를 위한 일탈을 할 생각은 있다."
-나이에 비해 동안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안은 아니었다. 어릴 때 조숙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동안이 되는 것 같다. 난 촬영 전 최상의 컨디션으로 들어가서 소진될 때까지 쓰는 스타일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운동하면 긍정적으로 성격이 변한다. 10번 짜증 낼 것이 5번으로 줄어든다."
-조진웅·곽도원 등과 함께 '아재파탈'로 불린다.
"트렌디하니까 '아재'라고 불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근데 우리 영화에서 동일이 형과 상호 형이랑 묶여서 '아재'라고 하는 건 기분이 좀 그렇다. 난 향기 쪽이다. 영화에서 막내라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의 좌우명이 '자신에게 냉정하자'다. 스스로 냉정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자기한테 굉장히 관대한데 남한테 냉정하다. 근데 성공한 사람들은 반대더라. 10년 후, 20년 후에도 그 좌우명과 '심상사성(心想事成,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진다)'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