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 스페인대사관에서 사흘전 만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훤칠한 키에 감색 재킷은 제법 잘 어울렸다. 어느덧 불혹에 이른 그는 여전히 날렵한 몸매와 준수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조금 늘어난 것만 빼면 '꽃미남'이라고 불리던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그는 "설렁탕과 수육을 먹었는데 신세계였다"면서도 "그렇다고 스페인 음식 대신 평생 먹으라고 하면 못 먹을 것 같다"며 농담을 던졌다.
◇ 내 몸 속엔 레알 마드리드 피 흐른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현존 최고의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 후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를 꼽았다.
모리엔테스가 현역으로 뛰던 2000년대 초반 세계 축구는 춘추전국시대였다.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 루트 판 니스텔루이, 지네딘 지단 등 전 포지션에 걸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특급 스타들이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모리엔테스가 전성기를 보낸 레알 마드리드만 해도 루이스 피구, 호베르투 카를로스, 라울 곤잘레스 등을 보유해 '지구방위대'라 불렸을 정도다.
하지만 2016년 현재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29·바르셀로나)의 존재 때문이다. 모리엔테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포함한 축구 팬들은 현재 '호날두-메시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들은 수년째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리엔테스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자긍심을 드러냈다. 그는 "스타가 탄생하고 사라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라면서 "중요한 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2명이 모두 스페인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스페인 축구 팬들은 큰 축복을 받은 셈이다. 최소한 2주에 한 번씩은 최고의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메시와 호날두 중 1명을 선택한다면'이란 질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호날두의 이름을 불렀다. 모리엔테스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나는 몸 속엔 레알 마드리드의 피가 흐르고 있다. 팀 후배를 찍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런 호날두도 11일 프랑스에서 개막하는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이하 유로 2016)의 주인공이 되진 못할 전망이다. 모리엔테스는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스페인과 독일을 꼽았다. 그는 "유로와 같은 단기전에선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하는 것만큼 조직력도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포르투갈은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회는 아무래도 유로 2012 정상에 올랐던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과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국 독일의 2파전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