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내년이면 데뷔 60주년이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이벤트나 새로운 다짐 따윈 없다. 지금까지 그랬듯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연기로 보여주겠다는 마음 뿐이다. 60주년보다는 최근 개봉한 영화 '사냥'에서 새로운 연기 변신을 했다는 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있다는 안성기다. '사냥'이 특별한 건 환갑이 넘은 그가 액션에 도전했기 때문. 극 중 사냥꾼 기성 역을 맡은 안성기는 총격신과 추격신을 벌이며 조진웅 등 엽사 무리를 제압하는 장면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근육은 그의 삶을 대변한다. 산을 뛰어다니는 장면에서 조진웅은 "토를 할 정도로 엄청 힘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안성기는 "힘들지 않았다. 뛸 수 있어서 오히려 행복했다. 저 처럼 나이 있는 배우에게 많은 액션을 할 기회를 줬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행복했다"며 웃는다.
-'사냥'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재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한민 감독이 새롭게 제작하는 영화가 있다며 시나리오를 주고 싶다고 해서 작년 초쯤 받아봤는데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모든 면에서 끌렸다. 캐릭터 이름을 내 이름을 거꾸로 한 기성으로 한 뒤 기획했다는 점도 영광이었다. 못 해본 분장과 비주얼도 흥미로웠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머리칼을 흩날리면서 아주 짐승같은 모습으로 연기할 내 모습이 상상돼서 정말 좋았다."
-액션이 많아서 부담스럽진 않았나.
"전혀. 뛸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 처럼 나이가 있는 배우는 액션을 하는 쪽 보다는 계략을 꾸미는 캐릭터 제안을 많이 받는다. 사실 외국에는 리암니슨도 그렇고 나이가 있는 배우들도 액션 영화를 하지 않나. 하지만 한국에선 일단 나이가 든 배우를 상대로 기획한 액션물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에 '사냥' 같은 걸 기획해준 것 자체가 고마웠고, 나한테 제안해줘서 황홀했고 행복했다. 솔직히 액션 장면을 하면서 힘들진 않았다. 앞으로도 액션 쪽으로 제안을 준다면 이야기만 재밌다면 무조건 하고 싶다. 아직은 몸을 쓰는 액션이 전혀 힘들지 않다."
-평지도 아니고 산에서 추격신을 하는 건 더 많은 체력을 요했을텐데.
"조진웅 씨를 비롯해서 다들 핵핵 거리더라. 그런 모습을 볼 땐 좀 미안하기도 했다. 나도 힘들다고 했어야했는데 난 진짜 괜찮았다. 후배 배우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장난스러운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웃음)"
-한예리를 업고 뛰는 장면도 있었다.
"비에 옷이 젖은 상태로 총도 들고 한예리 씨도 업고 뛰어야하는 신이었다. 다행히 한예리 씨는 무게감을 못 느낄 정도로 아주 아주 가벼웠다. 덕분에 힘들지 않게 찍었던 것 같다."
-조진웅과 찍은 계곡 신도 힘들게 찍었을 것 같다.
"추위 때문에 좀 힘들었다. 12월에 찍었는데 수온이 손 끝만 닿아도 '아우 차가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몸이 떨리면 안되는데 몸이 저절로 떨릴 정도로 추웠다. 예전에 '남부군' 촬영할 때가 생각나더라. 그때는 2월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물 속에서 찍었는데 정말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웠다. 감독님이 고개를 물 속에 넣었다가 빼라고 했을 땐 몸이 찢어지는 고통에 도저히 못 하겠다고 했었다. 이번엔 얼음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정말 춥긴 춥더라."
-민소매를 입고 있는 장면에서 단단한 근육을 자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한지 40년 정도 됐다. 지금 내 나이 정도 되면 단기간에 몸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몸이 허물어지면 회복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계속 어느 정도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거의 매일 운동을 하는데 빨리 걷고 달리는 걸 40분 정도 하고, 20분 정도 웨이트를 한다."
-'사냥' 덕에 '람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대사 중에 (엽사들이 람보 영감이라고 부르는 게 나와서) '람보'라는 애칭이 붙었는데 이왕이면 생각없는 람보가 아닌 고뇌하는 람보로 봐줬으면 좋겠다.(웃음) 그런데 람보 별명이 좋은건지 안 좋은건지는 모르겠다. 하하."
-데뷔한 지 올해로 59년이 됐다. "말이 안 되는 세월인 것 같다. 내년이면 60주년이라는 게 아직 와닿지 않는다. 59년이나 60년이나 나한테는 실감이 가는 숫자가 아닌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연기인생 59년 됐다고 하면 '도대체 몇 살이야? 끔찍하네? 한국전쟁(6.25) 때 태어난 사람이야?'라며 역사적인 느낌을 갖더라. 하하. 내년이면 60년이지만, 내년을 위해 특별히 진행 중인 작업이나 이벤트는 없다. 늘 그랬듯 새로운 영화를 촬영 할 것 같다. 구체화된 영화가 한 편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한 편이 있다. 구체화되 건 '워낭소리'를 한 이충열 감독의 신작 '매미소리'다. '매미소리'는 진도에 사는 다시래기꾼의 이야기다. 상가집 분위기를 띄우고 슬픔을 잊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무형문화재의 이야기다. 전라도 사투리도 해야하고 소리도 해야하고, 다양한 걸 준비해야한다. 작품적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구체화되지 않은 작품은, 조금 큰 (규모의) 영화가 될 것 같다."
-59년동안 연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직까지 열심히 작품을 할 수 있는 열정이 있다. 59년째 작품을 해온 이유는 당연히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영화 현장에 있을 때 어떤 때보다 행복하다. 현장에서 기다리는 것도 좋고 그러면서 다음 장면 생각하는 것도 행복하다. 심지어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이 될까?'라는 생각도 즐겁다. '언젠가 좋은 작품을 만나겠지'라는 기대감도 있다. 또 배우는 늘 새로운 캐릭터, 인물을 만나니까 그 만남도 설렌다. 또 요즘엔 연기를 근사하게 잘하는 후배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후배들을 보면서 자극도 많이 받는다. 예전에 같이 경쟁을 했다면, 난 살아남지 못 했을 것 같다.(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그냥 이대로가 좋다. 어떤 배우라는 게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지금 하루 하루 한 작품을 해나가는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